[#WeAreAPA 캠페인] 만화가 선미… “내 만화의 소재는 한국계 미국인의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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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발행 2021/05/14 미주판 4면 

5월 아태 문화유산의 달을 맞이하여 다채로운 행사가 진행된다. 맥도널드가 진행하는 #WeAreAPA 캠페인. [맥도널드 사진 제공]

5월은 ‘아시아태평양계 문화유산의 달’(이하 아태 문화유산의 달)이다. 아시아 태평양계 출신 이민자들의 미국 문화ㆍ역사에 대한 기여를 기념하는 달로 1990년 조지 부시 대통령 당시 연방의회가 문화유산의 달 기간을 한 달로 연장해 정식 지정했다.

지난 1일 조 바이든 대통령은 아태 문화유산의 달 31주년을 기념하여 “미국의 건설과 단합을 도운 아시아계 미국인과 하와이 원주민, 태평양제도 주민의 유산과 기여, 힘이 아니었다면 오늘날 미국의 역사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아태계 미국인들에게 공로를 돌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시아계 이민자들에 대한 왜곡된 시선은 여전히 존재한다. 올해 1분기 아시안 증오 범죄가 전년 동기 대비 164% 증가하여 새로운 갈등이 전개되고 있다.

올해만큼은 매년 돌아오는 아태 문화유산의 달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문화와 유산을 적극 알리는 달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세계적 패스트푸드 체인 맥도날드는 지난 7년간 아태 문화유산의 달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며 아시아계 역사와 문화 알리기에 앞장섰다. 페스티 밍크, 필립 제이슨(한국명 서재필), 애나 메이 웡 등 아시아계 이민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들을 집중 조명하는 공익광고를 진행했으며 작년에는 팬데믹 시기에 간호사, 교사 등으로 활약한 아시아계 지역 영웅들을 집중 조명하는 실시간 온라인 행사를 펼치기도 했다.

올해 맥도날드는 ‘디어 아시안 아메리칸’(Dear Asian American)과 ‘아시안 아메리칸 미디어센터’(Center for Asian American Media, CAAM)와 협력하여 주류 언론과 미디어가 담지 않는 아태계 이야기 7개를 소개하는 ‘우리는 아태계 미국인입니다(#WeAreAPA)’ 캠페인을 진행한다.

다양한 삶과 가치가 공존하는 7개의 이야기는 포토저널리즘과 동영상으로 5월 한 달간 매주 순차적으로 인스타그램 ‘Dear Asian American’를 통해 공개된다.

맥도날드 #WeAreAPA 캠페인의 아시아계 미디어 파트너인 중앙일보는 이 중 3개의 스토리를 선정, 앞으로 3주간 각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전하는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의 삶과 경험을 독자들에게 전할 예정이다. #WeAreAPA 캠페인의 다양한 이야기와 콘텐츠는 인스타그램 검색창에 ‘Dear Asian American’을 검색하여 확인할 수 있다.


#WeAreAPA 캠페인 – 만화가 선미

“내 만화의 소재는 한국계 미국인의 정체성”

북가주 한인 이민자 가정 출신
미대 재학 중 다양성 가치 느껴
만화 통해 아시아계 삶 그려내

만화가 선미에게는 다양한 수식어가 존재한다. 볼티모어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만화가, 삽화가, 트렌스젠더, 그리고 한국계 미국인. 선미는 그를 지칭하는 모든 수식어가 함께 어우러질 때 비로소 자신의 진짜 정체성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한국계 미국인이자 성소수자, 그리고 자신의 한국계 디아스포라적 정체성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만화가로서, 선미가 살아온 삶과 정체성, 그리고 그가 소수계 미국인으로서 주류사회가 바라보는 한국계 미국인에 대한 견해와 생각을 들어봤다.


<다른 아시안과는 달랐던 삶>

선미는 북가주 프레몬트 지역에서 태어나 학창시절을 보냈다. 선미의 부모님은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해 고국을 떠난 이민 1세였다. 프레몬트는 북가주에서도 비교적 부유한 도시로 꼽히지만 선미의 어린시절 삶은 그렇지 않았다.

사업의 어려움으로 아버지는 대부분의 시간을 한국에서 보내며 가족을 부양했고 자연스레 선미와 남동생은 어머니 혼자 돌보게 됐다. 선미는 “부모님께서 이혼하신 것은 아니시지만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가족이 떨어져 지내게 됐고 결과적으로 홀어머니 밑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게 됐다”고 회상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가정형편은 여전히 어려웠다. 선미의 세 식구는 렌트비에도 전전긍긍했고 어느 날은 집 앞에 강제퇴거 알림이 붙기도 했다. 여기에 어린 시절부터 깨달은 자신의 성 정체성은 혼란을 더했다. 선미는 “사실 아주 어릴 때부터 다른 성적 정체성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한국인, 기독교 가정, 보수적인 환경 등의 이유로 드러내지 못했다”며 “고등학교 시절 학교에 성소수자로서 정체성을 밝혔던 두 명의 친구가 있었는데 두 친구 모두 이로 인해 불행한 삶을 살았고 이런 모습들이 날 더욱 무섭게 했다”고 말했다.

<소수자로서의 정체성>

선미가 본격적으로 자신의 진짜 정체성을 깨닫게 된 계기는 대학에 진학하면서부터다.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꽃피우기 위해 진학한 메릴랜드 미대(Maryland Institute College of Arts, MICA)에서 그녀는 북가주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

MICA가 위치한 볼티모어는 흑인이 주로 거주하는 도시다. 또 선미가 다닌 MICA는 백인 학생층이 많은 학교이다. 아시안 인구가 많은 북가주, 그리고 다니던 고등학교 학생의 절반 이상이 아시안이었던 것과는 사뭇 다른 환경이었다. 선미는 “고등학교 시절 수업 중에 선생님이 ‘너희는 학교 밖 세상과 진짜 미국의 민낯을 모른 채 학교라는 거품에서 살고 있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는데 대학교를 와보니 그 뜻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가정 내에 재정적인 어려움은 있었지만 선미는 고등학교 시절 많은 아시안 학생들과 생활하며 사회적으로 소수자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백인학교, 흑인 커뮤니티 속에서 생활하는 선미는 말 그대로 이방인이었다. 미국인이었지만 동시에 한국계 미국인이자 무연고 이방인으로서 시작된 볼티모어에서의 삶은 자연스레 소수자의 의미와 다양성의 가치를 깨닫게 됐다.

아시안, 유색인종, 성소수자 등 선미가 볼티모어에서 만난 비슷한 배경과 환경의 사람들은 선미에게 공감과 연대라는 가치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었다.

선미는 “볼티모어에서 한 사회에서 배척당한 경험과 아픔이 있는 공동체들을 많이 만나게 됐다”며 “아픔을 가진 이들과 함께 공감하며 좀 더 정치적 및 사회적으로 소수자들의 메시지를 전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며 볼티모어에서의 삶이 자신이 가진 정체성을 세상에 표현하기 시작한 계기라고 설명했다.

2015년 볼티모어 프레디 그레이 사망사건 이후 인종차별에 맞서고 소수계를 대변하는 다양한 단체가 생겨났다. 선미는 그 중 하나인 ‘볼티모어 아시안 저항 및 연대’(Baltimore Asian Resistance and Solidarity, BARS)의 구성원으로 아시안으로서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각종 캠페인에 참여하며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나는 디아스포라 한국인, 아시아계 미국인, 성 소수자다. 내가 하는 모든 것이 나를 설명하고 나를 정의한다.”

<한국계 미국인이 바라보는 미국>

생업인 만화가로서 선미는 한국계 미국인, 성소수자 등 그녀를 수식하는 모든 정체성을 자신의 작품에 녹이며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를 대변하고 있다. 그가 작업한 다수의 만화 및 삽화는 그녀의 삶이 투영된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2023년 출판사 하퍼콜린스(HarperCollins)를 통해 발간되는 청소년 만화소설 ‘불새’(Firebird)의 주인공 또한 한국계 미국인이자 성소수자이다.

선미는 “나는 디아스포라 한국인, 아시아계 미국인, 성소수자다. 내가 하는 모든 것이 나를 설명하고 나를 정의한다. 내가 쓰는 이야기,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이 작가인 나의 삶과 환경을 반영할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더 진정성 있고 의미있게 다가간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선미는 미디어가 주입하는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없애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선미는 “TV, 영화, 심지어 만화 등 다양한 미디어에서 나와 같은 아시아계 미국인의 삶을 그린 이야기는 아직 접하지 못했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이라는 영화가 상영됐을 때도 ‘과연 아시아인들 중에 저만큼의 부를 누리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라는 의문만 들었을 뿐, 미디어를 통해 아시안의 평판과 이미지가 개선되고, 더 나아가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 나의 삶을 대변(representation)하고 있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선미는 “아태 문화유산의 달을 맞이하여 아시아계 미국인이라는 용어가 가져다주는 진정한 의미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그는 “본래 아시아계 미국인이라는 용어가 인종간의 평등을 주장하던 UC버클리 아시아계 학생이 조직한 단체에서 시작된 만큼 정치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다”며 “단순히 인종의 다양성을 높이기 위해 ‘아시아계 미국인을 채용하겠습니다’와 같이 백인 우월주의가 사용하는 꼬리표가 아닌 보다 집단적인 힘을 보여줄 수 있는 정치적인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길 희망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선미 만화ㆍ삽화 작품 웹사이트 = sunmiflowers.com/About

이균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