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수업 전환 8개월째…온라인 학습 현장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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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19 시대
커버스토리 | 팬데믹 원격수업의 현장

원격수업 기간이 길어지면서 학교와 교사들의 무관심으로 수업은 점점 지루해지고 지쳐가는 학생들은 까만 모니터에 이름만 남기고 있다.

A양은 LA 한인타운에 위치한 학교 중에서 괜찮은 학교로 평가받고 있는 고교 11학년에 재학중이다. 팬대믹으로 인해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한 지 벌써 8개월 째. 10학년 2학기를 온라인 수업으로 겨우 마무리했고 여름방학을 보낸 후 다시 온라인 수업으로 11학년 가을학기를 지내고 있다. 하루 6교시. 그 중 4개 수업이 AP Eglish Language를 포함해 AP과목들이다. 11학년 성적이 대입 지원 시 가장 중요한데다 내년에는 AP시험까지 치러야 하므로 하루하루의 수업이 정말 중요하지만 실상 수업상황은 이러한 간절함을 전혀 받쳐주지 못하고 있다. 1시간으로 예정된 수업은 30분이 지나기도 전에 끝나기 일쑤고 취소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수업시간 중 모니터에서 학생들의 얼굴이 사라진지 오래다. 학생들의 얼굴로 가득 차야 할 모니터는 그저 까만 화면에 불과하다. 분명 학생들이 다 참석해야 함에도 얼굴을 보이라고 혼내는 교사는 없고 오히려 장려하는 분위기다. 학생도, 교사도 누구도 수업엔 관심이 없다.

비대면 수업효율 떨어지지만…

카운슬러·교사 연락 안돼
대입 지원서 작성도 차질

대입시험도 줄줄이 취소
성적 관리도 힘들어 고민

한 시간으로 예정된 수업이 수시로 20분~30분만에 종료되는 상황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예정보다 일찍 끝난 수업 모니터를 보고 있는 한 학생의 모습.

온라인 수업으로 인한 가장 큰 문제는 커뮤니케이션의 부재다. 온라인으로 매일 수업을 하고 있지만, 교사와학생 간의 실질적인 대화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LA를 중심으로 한인 재학생 수가 많은 일부 학교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수업 실태는 예상과 아주 달랐다.

12학년 B군은 당초 1지망 대학에 조기 지원서를 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가장 추천서를 잘 써줄 것으로 믿고 있었던 11학년 영어 교사에게 여러 차례 이메일을 보냈지만 10월 말까지도 답이 오지 않았다. 카운슬러에게 이메일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마감을 며칠 앞두고서야 겨우 해당 교사가 학교를 그만둔 것을 알 수 있었다. 뒤늦게 11학년 미국사 교사에게 이메일 했지만, 추천서 써줄 학생이 너무 많아 정해진 시간 내에는 어렵다는 답을 들어야 했다. 결국 추천서를 받지 못해 조기 지원은 포기해야 했다. B군은 같은 학교 친구들뿐 아니라 다른 학교에 다니는 학생 중에도 추천서 써줄 교사와 연락이 닿지 않아 속앓이한 케이스들을 너무 많이 봤다고 밝혔다.

11학년인 A양은 의대 진학을 꿈꾸고 있다. 대학에서 생물과 화학을 전공할 계획이다. 그래서 일찌감치 10학년에 AP Biology를 선택해 A를 받았고 온라인시험이었지만 AP 시험에서도 5점 만점을 받아둔 상태다. 지금도 AP English Language, AP US History, AP Calculus AB, AP Chemistry 등 4개의 AP 수업을 듣고 있다. 하지만 AP Chemistry에서 도저히 A를 받지 못할 것 같아 절망하고 있다. 해당 과목 교사가 수업이 시작되면 20~30분 만에 끝내버리는 경우가 다반사인 데다, 숙제 분량은 많고 시험과 퀴즈는 거의 하루 걸러 한 번씩 있기 때문이다. 1시간짜리 수업이 절반으로 줄어들었으니 당연히 배우는 내용도 거의 없는데 수업에서 전혀 다뤄지지 않은 내용이번번이 시험에 나오기 때문에 좋은 시험 점수도 기대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답답한 마음에 카운슬러에게 이메일을 보냈지만, AP 수업은 원래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해서 터득해야 한다는 원칙이라 어쩔 수 없다는 답을 받았을 뿐이다.

10학년인 C양은 새 학년이 시작된 후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한 같은 반 학생들이 너무나 많다. 줌으로 진행되는 수업에서 학생들이 화면을 켜지 않아도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난 학기만 해도 반 학생 중 절반 정도의 얼굴이 화면에 보였지만 지금은 한 명도 모니터를 켜지 않는 수업이 더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사들도 전혀 이런 환경을 개의치 않고, 심지어 일부 교사는 화면을 끄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알렸다. 이렇다 보니 수업에 실제로 참여하는 학생들이 몇 명인지 알 수도 없고 그룹 프로젝트는커녕 교사가 수업 중 학생들에게 질문하는 일도 거의 없다고 수업 분위기를 들려줬다. 그동안 비디오를 켜놓고 수업을 듣던 친구들도 지금은 오히려 친구들과 교사가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하나둘씩 비디오를 끄기 시작해 수업 시간은 까만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됐다.

11학년 P군은 여름방학부터 SAT 시험준비를 해 왔다. 하지만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등록해 놓았던 시험장이 계속 문을 닫아 벌써 수개월째 시험공부만 한다. 이왕 공부했으니 언제든 시험장이 열리면 시험을 치를 생각이다. 하지만 만일 칼리지보드에서 시험 날짜를 계속 취소하거나 시험장이 문을 닫으면 대입지원 시 그동안의 GPA만으로 심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어 P군은 조금 두렵다. P군은 “10학년 1학기 성적을 망쳐버려서 SAT 시험에서 좋은 점수가 나오면 아카데믹한 부분을 좀 더 보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SAT 공부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며 “만일 시험을 계속 못 보게 된다면 GPA 비중이 더 커질 텐데 걱정”이라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게다가 현재 11학년 1학기 수업은 학교에서 알파벳 성적 대신 크레딧/노크레딧(P/NP)으로 기재할 것이라고 밝혀 걱정이 더 많다고 한숨을 쉬었다.

가벼운 자폐증세를 갖고 있는 12학년 D군은 학교 장애 프로그램에 가입돼 있다. 원래대로라면 학교 시험이나 숙제 등을 학교에서 제공하는 특수교육 담당교사의 도움을 받아서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되면서 학교에서 특수교육 담당 교사들의 근무 일수를 줄이는 바람에 수개월째 전혀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SAT 시험의 경우도 학교에서 시험관을 배정하면 집이나 학교 등 지정된 장소에서 별도로 시험을 볼 수 있는데 학교 카운슬러들의 수도 줄면서 이러한 혜택은 요원해졌다.

온라인서 다양한 과외활동 시도

클럽 발족하고 가입하고
오프라인 못지않게 활동

대면 수업이 안된다고 해서, 학교에 갈 수 없다고 해서, 모든 게 정지된 것은 아니다. 이 와중에도 여전히 예전과 다름없이 활발하게 클럽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학교도 있다. 어쩌면 오히려 팬데믹 이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클럽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학생들의 활동내용을 알아봤다.

발렌시아 고교의 재스민 전(11학년)양은 올해 달라진 스피릿 위크(Spirit Week)를 경험했다. 평소 학생들의 학교 사랑을 권장하는 스피릿 위크 행사는 매년 가을학기가 시작되면 교내 이곳저곳에서 떠들썩하게 벌어졌다. 팬데믹으로 인한 원격수업으로 올해는 행사가 취소될 줄 알았다는 전양은 “올해도 그와 똑같은 분위기를 온라인을 통해 경험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학교 측에서는 온라인상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게임을 마련했고, 각종 재미있는 대회를 통해 경품을 나눠주는 등 오프라인 못지 않은 행사를 진행했다. 특히 행사에 참여하는 학생들에게는 엑스트라 포인트를 제공해 너도나도 참여했다고 전양은 들려줬다. 전양은 “학교에서 올해 스피릿 위크 행사 우승자들을 연말에 발표한다고 알리면서 큰 상품을 예고해 다들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리스 임(아널드벡맨 고교 11학년)도 지난달 학교에서 마련한 클럽 홍보 행사 ‘클럽러시(Club Rush)’에 참여했다. 원래는 각 교내 클럽 멤버들이 학교 점심시간 중에 카페테리아 인근에 각자 부스를 마련해놓고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클럽을 홍보하고 가입을 권유하는 행사였지만 올해는 줌 미팅으로 클럽을 홍보한 것이다. 온라인을 통한 홍보였음에도 각 클럽은 예년보다 더 활발하고 눈에 띄는 플래카드를 선보이고 재미있는 멘트로 신입생들과 학우들에게 적극적으로 클럽활동을 알렸다는 임양은 “줌미팅에 들어온 학생들이 재미있는 홍보가 나오면 줌 미팅에서 박수 이모티콘 등으로 지지하며 참여했다”며 “온라인으로 클럽활동을 하는 게 매우 신기하면서도 재미있었다”고 경험담을 나눴다.

사이언스매그닛 고교 11학년인 레이철 이양의 경우 가을학기 시작과 함께 학교에서 온라인 클럽 러시를 알리는 이메일과 권유를 받으면서 클럽을 시작했다.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학생들에게 클럽 가입과 활동을 권유하자 평소 클럽을 새로 시작하는 데 관심 있었던 학생들은 관심을 보였다. 학교 측은 새로운 클럽 발족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학생들이 나오면 필요한 지원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양도 “학교의 권유를 받고 학교 홈페이지에 새로 시작한 클럽을 알리는 안내문을 공지했다”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멤버 영입을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기쁘다”고 말했다.


“일대일 멘토로 신입생 도와요”

링크크루 리드 멘토 / 진 유(페어팩스고교)

페어팩스고교 12학년에 재학 중인 진 유(사진) 양은 교내 클럽인 링크크루(Link Crew)의 리드 멘토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올라오면서 달라지는 학교생활을 겪는 새내기 신입생들이 잘 적응할 수 있게 지원하는 링크 크루는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되면서 잠깐 주춤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더 할 일이 많아졌다.

예년 같으면 여름방학부터 인근 중학교에서 페어팩스 고교로 입학할 학생들을 그룹별로 찾아다니고, 입학하면 학교생활 중에 생기는 고충을 들어주고, 대학진로에 대한 방향이나 진로도 함께 고민하는 든든한 멘토가 되어 신입생들을 도와주는게 링크크루 선배들의 역할이었다. 또 매년 9월 신입생들을 환영하고 학교생활을 안내하는 오리엔테이션 행사를 마련했었다.

하지만 올 가을학기 수업도 비대면 수업으로 된다는 사실을 접한 링크크루 멤버들은 여름방학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방학 동안 학교에 가서 찍은 교내 이곳저곳 영상을 이용해 오리엔테이션 영상을 제작했고 이를 학교 웹사이트에 올려서 예비 신입생들이 버추얼 오리엔테이션을 참석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가장 큰 임무는 비대면 수업으로 성적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9학년 학생들을 위한 일대일 튜터링을 제공하는 것. 멘토 2명당 10명의 신입생을 맡아 문자를 통해 온라인으로 수업하는데 어려운 문제는 없는지, 도움이 필요하지는 않은 지 일일이 알아본 결과 예년보다 수업을 따라가기가 힘들다는 피드백이 높자 개인 튜터링이라는 예년에 없던 프로그램을 만들어낸 것.

링크크루에서 9학년 신입생들과의 친목유대를 위해 줌으로 주최한 무비나이트(Movie Night) 행사. [사진 진 유 제공]

또한 9학년 학생들 간에 서로 친숙해질 수 있도록 일주일에 한 번씩은 무비 나잇이라는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유양은 “비대면 수업이라는 엄청난 변화에 대해 학생들이나 학교도 이에 마주하는 방식을 바꿔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우리 클럽 역할부터 바꿔보자는 마음들이 합쳐져 오히려 클럽활동이 예년보다 더 활성화된 느낌이라고 밝혔다.

장연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