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고 있다는 착각’…“목표 없이 읽는 것은 산책이지 공부가 아니다”

학교 현장에서 가장 흔하게 듣는 질문 중 하나가 “우리 아이는 책을 분명히 읽었는데, 왜 시험에서는 전혀 모르는 것처럼 답을 쓸까요?”다. 많은 부모가 이런 상황에 답답함을 느낀다. 아이 역시 억울하다. 분명히 읽었고, 반복해서 훑어보았는데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하버드대 인지심리학 박사이자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학습법 전문가 중 한명인 데니얼 윌링햄은 그의 저서 ‘공부하고 있다는 착각’에서 ‘읽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전혀 다른 과정이며, 어려운 글일수록 뇌가 다르게 움직이도록 전략을 세워줘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교과서는 소설책처럼 쭉 읽어 내려가서는 절대 이해되지 않는다. 짧은 문장 속에 여러 개념이 압축되어 있고, 배경 지식을 전제로 쓰여 있기 때문이다. 결국 어려운 글을 읽는 기술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사고의 방식을 바꾸는 훈련이다.  

몇 가지 그가 지시한 비법을 배워보자.  

▶ 읽기 전 ‘목표’를 세우는 것이 왜 중요한가

윌링햄 박사는 “목표 없이 읽는 것은 산책이지 공부가 아니다”고 말한다. 실제로 목표 설정은 읽기의 첫 관문이다. 목표가 없는 읽기에서는 뇌가 정보의 중요도를 판단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중학교 과학에서 ‘광합성’ 단원을 읽을 때 목표 없이 읽는 아이는 글 속의 단어들을 차례로 따라갈 뿐, “이 과정에서 무엇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가”를 떠올리지 않는다.  

그러나 목표를 세운 아이는 다르다. ‘광합성의 단계가 무엇인지, 왜 그런 과정이 필요한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기준을 세우고 읽기 시작한다. 뇌는 그 기준에 맞춰 정보를 골라 담고, 이해해야 할 부분과 넘어가도 되는 부분을 구분한다. 읽기 전에 30초만 투자해 목표를 설계하면 읽기의 질이 완전히 달라진다. 목표는 공부의 방향뿐 아니라 뇌의 작동 방식까지 바꾸는 장치라는 것이다.  

▶ 밑줄을 긋는 습관이 왜 독이 되는가

많은 학생이 ‘열심히 공부했다’는 증거처럼 책에 형광펜을 가득 칠한다. 하지만 윌링햄은 밑줄 긋기야말로 뇌를 멈추게 하는 대표적인 비효율적 공부법이라고 말한다.  한 고등학생의 사례를 떠올려보자. 그는 세계사 교과서 곳곳에 줄을 긋고 색을 칠했다. 하지만 막상 시험에서는 주요 사건의 흐름을 설명하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줄을 긋는데 집중했지, 내용의 의미를 연결하는데 집중하지 않았다. 밑줄은 이해를 돕는 과정이 아니라, 중요해 보이는 문장을 표시하는 행위로 끝나버린 것이다.

진짜 공부는 밑줄 아래가 아니라, 밑줄을 긋고 난 뒤 학생의 머릿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문단을 읽고 나만의 말로 다시 정리하고, “왜 중요한가?”를 스스로 물어보는 과정이 이해를 만든다.

▶ 뇌가 글을 이해하는 방식 알기: 배경 지식과 연결이 핵심

아이들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할 때, 대부분의 문제는 글의 난이도가 아니라 배경 지식의 부족에서 비롯된다. 뇌는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일 때 항상 기존 지식과 연결하여 의미를 만든다.

한 초등학생이 사회 교과서에서 ‘삼권분립’을 배우는 장면을 보자. 그 개념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권력 남용’이나 ‘역사적 사건’에 대한 경험적 배경이 없다면 글의 의미는 갑자기 추상적으로 느껴진다. 반면, 최근 뉴스를 아빠와 함께 본 경험이 있는 아이는 훨씬 빠르게 내용을 흡수한다. 배경 지식이 뇌 속의 갈고리 역할을 하여 새 정보를 걸어두는 것이다.

따라서 읽기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알고 있어야 할까?’이다. 모르는 부분을 바로 채우거나, 기존 지식과 연결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글이 살아 있는 의미로 변한다.

▶ 교과서는 천천히, 여러 번 오가며 읽는 책이다

교과서를 읽을 때 가장 해로운 습관은 한 번에 끝까지 읽으려는 것이다. 교과서는 단 한 문장에도 많은 개념이 압축돼 있기 때문에, 빠르게 읽으면 이해는 반드시 누락된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 물리에서 ‘속도와 가속도’ 단원을 읽는 학생을 보자. 처음에는 두 개념이 비슷하게 느껴져 혼란을 겪는다. 하지만 문장을 여러 번 오가면서 예시 그림을 함께 보고, 일상적 장면(자동차가 출발하는 순간 등)과 연결하면 개념이 서서히 구조를 이룬다. 이 반복 과정이 바로 뇌 속에서 개념이 확실히 자리를 잡는 순간이다. 읽기는 직선이 아니라 왕복선이다. 앞뒤를 반복해 오가며 개념을 쌓는 과정은 느리지만, 이해로 가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문의:(323) 938-0300

 www.GLS.school

교장 세라 박 / 글로벌리더십 중·고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