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선택 소녀들이 늘어났다…14년 전 돌연 퍼진 ‘비교 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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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정선언 (한국 중앙일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의 대선 승리에 묻혀버린 중요한 뉴스가 있습니다. 호주 정부가 만 16세 전에는 소셜미디어 가입을 금지하는 법안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건데요. 이달 중 의회에 법안이 상정돼 통과되면, 12개월 후 시행되죠. 소셜미디어를 술이나 담배처럼 청소년에게 유해하다고 결론 내린 겁니다. 전 세계적으로 스마트폰, 그리고 그 안에서 돌아가는 특정 서비스가 아이들에게 유해하다는 합의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은 아이들에게 얼마나 위험한 걸까요? 결국 답은 금지밖에 없는 걸까요? 헬로페어런츠(hello! Parents)가 ‘스마트폰 중독’을 주제로 4권의 책을 읽어드리고 있는데요. 두 번째 책은 『불안세대』입니다.

박다은 디자이너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90323
“이 책에서 내가 주장하려는 핵심은 1996년 이후에 태어난 아동이 불안 세대가 된 주요 원인이 이 두 가지 추세-현실 세계의 과잉보호와 가상 세계의 과소 보호-에 있다는 사실이다.”

2019년 5월, 저자 조너선 하이트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는 한 고등학교에 강연을 갔다가 교사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학생들의 정신 질환이 급증해 고민이 많다.” 우울증, 불안 장애뿐 아니라 자해 건수도 늘어났다는데요. 특히 여자아이들이 취약했습니다. 2010년대 초반부터 전 세계적으로 청소년에게 밀어닥친 정신 질환 쓰나미를 확인한 것이죠.

하이트 교수는 2012년 ‘포린폴리시’에서 글로벌 100대 사상가, 2019년 ‘프로스펙트’에서 세계 50대 사상가로 선정될 만큼 저명한 사회심리학자인데요. 강연에 다녀온 뒤 ‘소셜미디어가 10대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1996년 이후 태어난 Z세대에 주목했어요. 디지털 세계에서 처음으로 사춘기를 보내는 세대였거든요. 이들은 틱톡·유튜브·인스타그램 등을 하면서 상당 시간을 보내는 특징을 갖고 있었죠.

이 책은 그 연구의 결과물입니다. 교사의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방대한 연구 결과, 청소년의 건강 문제가 악화했다는 것을 확인했죠. 그는 ‘놀이 기반 아동기’가 ‘스마트폰 기반 아동기’로 대체되면서 발달 과정에 문제가 생겼다고 진단합니다. Z세대 위기를 인지한 하이트 교수는 이 위기를 돌파할 방법을 책에 담았는데요. 이 글에서는 저자가 강조한 Z세대의 실태와 문제를 해결할 대책을 소개하겠습니다.

우울한 10대, 여자아이들이 더 위험

“2010년부터 2015년까지 미국 10대의 사회생활은 대체로 소셜미디어, 온라인 비디오게임, 그 밖의 인터넷 기반 활동에 계속 접근할 수 있는 스마트폰으로 옮겨갔다. 아동기 대재편이야말로 2010년대 초에 시작된 청소년 정신 질환 급증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큰 원인이다.”

Z세대 중 나이가 많은 아이들은 2009년께 사춘기에 접어들었는데요. 그즈음 소셜미디어가 빠르게 퍼져 나갔습니다. 2007년 아이폰이 처음으로 출시됐고요. 2010년 카메라 기능이 장착된 아이폰4가 출시돼 사진과 영상을 촬영하기 쉬워졌습니다. 페이스북은 2004년, 인스타그램은 2010년 출시됐고요. 이 세대는 사춘기 무렵 스마트폰을 갖게 됐고, 소셜미디어에 게시물을 올리고 들여다보느라 바빠졌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사회적 관계를 잃어버렸습니다. 스마트폰에서 알림 메시지가 올 때마다 주의력이 분산됐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느라 수면의 양과 질이 떨어지기도 했죠.

결과적으로 10대들은 불안과 우울증 같은 정신 질환에 시달리게 됐습니다. 자해·자살 비율도 크게 늘었어요. 하이트 교수가 이들을 ‘불안 세대’라 이름 붙인 이유죠. 2000년대에만 해도 청소년들에게서 이런 징후는 거의 보이지 않았는데요. 2010년대 초반에 급증하기 시작합니다. ‘정신의학 진단편람’에 따르면 불안은 ‘미래의 위협에 대한 예상’인데요. 미래에 대한 위협을 지나치게 크게 느끼면 일상생활에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불안으로 인해 최악의 상황을 지나치게 일반화하면,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특히 위험한 건 여자아이들이었어요. 문제는 바로 소셜미디어였고요. 이유는 네 가지나 됩니다. 먼저 여자아이는 사회적 비교에 영향을 받습니다. 사회심리학자 수전 피스크는 인간을 ‘비교 기계’라고 하는데요. 여성의 경우 사회적 지위가 아름다움에 좌우되기 때문에 그런 경향이 강합니다. 청소년은 더 취약하고요. 보여지는 것이 중요한 인스타그램이야말로 비교를 부추기죠.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메타의 내부고발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10대들의 불안과 우울증 증가 원인으로 인스타그램을 지목한다.”

두 번째 이유는 남자아이들이 신체적 폭력을 행사하는 데 비해 여자아이들은 관계를 손상하며 폭력을 행사한다는 점입니다. 소문을 퍼뜨리고, 친구들을 돌아서게 하죠. 미국의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9년까지 매년 여자 고등학생 5명 중 1명이 사이버 집단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해요. 같은 기간 남자 고등학생은 10명 중 1명이 사이버 집단 괴롭힘을 당했고요.

세 번째 이유는 여자아이들이 감정을 더 쉽게 공유한다는 겁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여성이 우울증에 빠지면 친구들도 우울증에 빠질 가능성이 142%에 달한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범죄나 협박에 노출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겁니다.

정글짐이 사라진 놀이터, 그 의미는

“이렇게 1990년대에 두려움에 사로잡힌 양육 방식이 증가하면서 결국 2000년 무렵에 영어권 국가들의 공공장소에서 부모의 감시를 받지 않는 아이들이 사라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중략) Z세대는 바로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라났다.”

Z세대가 불안에 시달리는 건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때문만은 아닙니다. 심리학자와 사회학자들은 과잉보호하는 양육 방식에서 그 원인을 찾기도 합니다. 핵가족화와 도시화로 인해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선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상태가 됩니다. 과거엔 온 동네 어른들이 아이들을 지켜봤습니다. 그러니 대여섯 살 아이들도 동네를 활보하며 놀 수 있었죠. 자기들끼리요.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아이들을 지켜볼 어른의 시선은 어디에도 없죠. 자녀의 안전을 오롯이 양육자가 책임져야만 합니다. 사회학자 프랭크 푸레디는 부모들을 편집증에 사로잡힌 양육으로 몰아간 요인으로 ‘어른 간 결속력 붕괴’를 꼽았어요.

게다가 부모 입장에선 세상 모든 사람이 위험으로 느껴집니다. 매스미디어와 소셜미디어에선 자극적인 범죄가 주로 조명될 수밖에 없는데요. 그럴수록 부모들은 어떤 어른도 믿을 수 없어지죠. ‘내 아이는 내가 지켜야 한다’고 다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이렇게 생각합니다. ‘남의 아이에게 참견하지 말자’라고요.

그 결과 부모들은 더 많은 시간을 양육에 쏟습니다. 아이 혼자 둘 수 없으니 말입니다. 그리하여 2000년대에 이르러선 부모의 감시를 받지 않는 아이들은 사라지고 말았죠. 아이들은 완벽하게 안전한 환경에서 살아가게 됐는데요. 뺑뺑이나 정글짐 같이 스릴 넘치는 기구가 놀이터에서 사라진 것도 그래서입니다. 그럴수록 아이들은 위기 혹은 돌발 상황에서 자신을 돌보는 법을 배우기 어려워졌고요.

Z세대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라났어요. 안전 지상주의에 빠진 부모는 아이를 위험이 완전히 제거된 세계로 이끌었습니다. 그 결과 아이는 필요한 만큼 충분한 도전을 경험하지 못하게 됐고요. 게다가 부모가 아이를 감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쥐여주기도 했어요. 식당에서 아이들이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려고 스마트폰 동영상을 보여주는 것처럼요. 안전 지상주의와 스마트폰이 만나면서, 아이는 현실에서 다양한 경험과 도전을 통해 성장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죠.

Z세대에 정통한 사회심리학자의 솔루션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아이를 양육해야 할까요? 하이트 교수는 실태를 다루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솔루션까지 제시하죠. 그것도 아주 구체적으로요.

💉솔루션① 자유 놀이를 허하라

“우리가 정말로 자녀를 안전하게 지키길 원한다면, 가상 세계에 진입하는 시기를 늦추고, 대신에 밖으로 내보내 현실 세계에서 뛰어놀게 해야 한다. 감독받지 않는 실외 놀이는 아이들에게 많은 종류의 위험과 도전 과제에 대처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사람의 뇌는 발견 모드와 방어 모드, 이렇게 두 가지 모드로 작동하는데요. 과잉보호 속에 자란 아이의 뇌는 방어 모드가 됩니다. 위험을 다루는 능력이 떨어지고, 불안을 더 많이 느끼고, 새로운 상황을 잠재적 위협으로 여기죠. 그럴수록 부모에게 더 많이 의존하고요. 반대의 경우는 발견 모드가 됩니다. 새로운 상황을 위협이 아니라 뭔가를 발견할 기회로 여기죠. 그래야 도전할 수 있고요. 도전해야 좌절과 실패도 경험합니다. 좌절과 실패를 겪어야만 헤쳐 나가는 경험도 할 수 있죠. 그 경험이 바로 자기에 대한 믿음의 출발이고요. 비바람을 맞으며 자란 나무일수록 강한 바람을 더 잘 이겨내는 법이죠. 그래서 저자는 현실에서 아이를 과잉보호하지 말고 과소 보호하라고 말합니다.

아동기는 특정 문화권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술을 학습하는 시기입니다. 특히 9~15세가 문화 학습의 적기죠. 그런데 아이들은 이 시기 스마트폰에 빠져 현실에서 제대로 놀지 못합니다. 하이트 교수는 Z세대가 ‘스마트폰 기반 아동기’가 아니라 ‘놀이 기반 아동기’를 보내야 한다고 주장해요. 문화 학습이야말로 놀이를 통해 일어나는 것이니까요.

새끼 사자는 형제·자매와 몸으로 놀면서 사냥법을 배웁니다. 사자뿐이 아니에요. 포유류는 놀이를 통해 학습하죠. 놀이를 박탈당하면 인지뿐 아니라 정서와 사회성에 손상을 입습니다. 놀이는 그저 노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적 기술을 발달시키고 불안을 극복하는 방법을 배우는 학습 과정이죠. 핵심은 위험이 제거되지 않은, 조직되지 않은 자유 놀이여야 한다는 겁니다. 하이트 교수가 혼자 학교에 가고 자기들끼리 자유롭게 놀 시간을 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죠.

💉솔루션② 스마트폰은 최대한 늦게

“우리는 젊은이들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공동체 대신에 디지털 소셜 네트워크에서 자라도록 방치했다. 그러고 나서는 아이들이 외로움을 느끼며 실제적인 인간관계의 연결에 굶주린다는 사실에 놀란다. 우리는 두 영역 모두에서 사려 깊은 정원사가 될 필요가 있다.”

어느 국가나 담배·술·도박에는 연령 제한이 있습니다. 반면에 소셜미디어엔 연령에 따른 규제가 별로 없죠. 해악(害惡)이 많은데도 말입니다. 하이트 교수는 사회적 차원의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정부와 학교, 그리고 어른들이 나서야 한다고요. 미국에선 13세면 인터넷상에서 어른과 마찬가지로 활동할 수 있어요. 소셜미디어 가입 연령도 13세입니다. 하이트 교수는 이를 16세로 올리자고 제안하죠. 소셜미디어의 부작용에 민감할 시기를 지난 뒤에 가입하게 하자는 겁니다.

학교에선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자고 해요. 끄거나 무음 모드로 해두는 정도가 아닙니다. 등교하면서 반납했다가 하교할 때 돌려주자고 하죠. 물리적으로 떨어뜨리자는 얘깁니다. 쉬는 시간에도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말입니다. 학습뿐 아니라 대인관계에도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요. 그래야 청소년들의 정신 건강이 좋아진다는 거죠.

가정에서 양육자가 할 일도 많습니다. 먼저 스마트폰의 자녀 보호 기능 사용법을 익히세요. 아이가 접근하면 안 될 사이트를 파악하고, 접근하지 못하도록 조치하시고요. 소셜미디어 가입은 16세 이후로 미루고, 혹시 이미 계정을 가지고 있다면 개인 데이터를 플랫폼에 제공하는 옵션은 선택하지 않도록 합니다.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알고리즘이 맞춤형 콘텐트를 노출해 중독에 빠지게 하니까요.

그의 주장을 따라가다 보면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시간을 전혀 주어선 안 되는 건가’ 하는 의문이 생기는 데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된다면, 약간은 허용해도 됩니다. 충분히 자고, 친구들과 충분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죠. 특히 가정에선 충분히 자도록 신경 써야 하는데요. 계획표를 활용하면 좋습니다. 식사 시간과 취침 시간은 물론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에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는 것도 방법이고요. 아이와 함께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정하고, 이를 지키도록 지도하세요.

hello! Parents 읽기 가이드

굳이 분류하자면, 저는 자유방임형 양육을 지향합니다. 아이가 친구들과 어울려 놀면서 관계를 형성하고, 갈등을 해결하고, 성장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방과 후 일정도 아이 스스로 정하도록 하는 편입니다. 학원에도 거의 보내지 않고요. 온라인이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주말에만 하루 2시간 게임이나 유튜브를 할 수 있도록 원칙을 정해뒀지만, 아이들은 주중에도 식사 전후 틈틈이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보곤 합니다. 잠깐이니 저도 모른 체했죠. 아이의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지도, 사용 서비스나 시간을 제한하지도 않았어요.

이 책을 지금이라도 읽어서 다행입니다. 현실 세계나 가상 세계나 비슷한 열린 공간으로 여겼던 자신을 반성했죠. 익명의 세계인 온라인에선 누구든 다양한 폭력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아이는 더 큰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고요. 그러니 현실과는 분명 다르게 접근해야 합니다. 적어도 가상 세계에서만큼은 방임이 아니라 방치를 하고 있었던 셈이죠.

우선 아이들의 소셜미디어 가입 시기부터 늦추려고 합니다. 아이의 휴대전화 사용을 관리하는 앱도 다운받았어요. 그리고 다짐했습니다. 가상 세계에선 좀 더 보호하지만, 현실 세계에선 지금처럼 덜 보호하자고요. 더 많이 놀 수 있도록 기회를 주려고 합니다.

“우리는 보호 노력을 잘못 배분하고 있다. 우리는 아이에게 현실 세계에서 필요한 연습을 더 많이 제공하고, 얻는 이득은 적고 가드레일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온라인 세계 진입을 최대한 늦추어야 한다.”

이혜민 객원기자 lhm5866@hanmail.net,
정선언 기자 jung.sunean@joongang.co.kr,
박다은 디자이너 park.daeun2@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