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낮춘 美명문대 문턱… “SAT 점수 빼니 지원자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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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중앙일보] 입력 2021/04/06 00:17 수정 2021/04/06 00:32

미국 대학들이 올가을 학기 신입생 선발을 앞두고 고심에 빠졌다. 코로나19 여파로 지원 자격 요건을 완화하자 학생들이 너도나도 몰려들면서다. 대학 문턱이 낮아져 구성원의 다양성 확보가 가능해졌다는 평가와 함께 정확한 선발 기준 없이 경쟁률만 높였다는 우려도 나온다.

5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는 “주요 대학들의 올가을 신입생 선발에 입학지원서가 폭증했다”고 보도했다.

미 대입 지원 사이트인 ‘커먼앱’에 따르면 지난 2월 각 대학의 원서접수 마감 결과 600만 건이 접수됐다. 전년 대비 11% 늘어난 수치다.

특히 명문대에서 지원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는 전년보다 66% 늘어난 3만3240명이 지원했고,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에는 28% 늘어난 13만9500명이 지원서를 냈다. 이 밖에 버지니아대, 하버드대도 각각 전년보다 15%, 42%의 지원서가 접수됐다.

이처럼 올해 미 대학 입시에 지원자가 몰린 까닭은 입시 전형에서 SAT와 ACT 등 표준화된 시험 점수를 배제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에서 SAT와 ACT 성적은 대학 진학의 주요 항목으로 꼽힌다. 그런데 지난해 팬데믹 속에 SAT·ACT 시험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입시 일정에도 차질이 생겼다.

결국 하버드, 뉴욕대, UCLA, MIT 등 상당수 명문대가 시험 점수를 입시 전형 항목에서 빼거나 선택 항목으로 바꿨다. 학생들은 SAT 점수가 필수가 아닌 선택사항이 되자 “한번 넣어나 보자”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 커먼앱 발표에 따르면 올해 지원자 가운데 44%만이 SAT 또는 ACT 점수를 제출했다. 전년 대입 지원자 가운데 77%가 점수를 제출한 것과 비교하면 크게 줄어든 수치다.

WP에 따르면 미 주요 대학에서는 입시 전형 변화가 다양한 출신의 학생을 선발하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험 점수가 아닌 봉사활동·인턴십·에세이 등 평가 방법을 넓혔기 때문이다. 실제 뉴욕대에서는 올해 흑인과 라틴계, 원주민 출신의 합격률이 전년보다 27% 늘어나 전체 합격생의 29%를 차지했다. 저소득층과 교육 수준이 낮은 지역의 학생들 합격률도 늘었다.

UCLA 측은 “지금까지 시험 점수가 학생의 학업 결과를 대변했지만, 그것이 합격 여부를 주도하지는 않는다”며 앞으로 SAT 점수를 선택 항목으로 유지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SAT·ACT 점수를 미반영할 경우 입시 현장에 혼란이 일 것이라고 우려한다. SAT와 ACT 대신 어떤 항목을 선발 기준으로 둘 것인지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이번 입시에서도 교사 추천서, 에세이 등 정성평가로 학생들을 선발해야 했는데, 구체적인 평가 기준이 마련되지 않아 대학들이 골머리를 앓았다고 WP는 전했다. SAT에서 고득점을 받아온 학생들도 입시 전형이 갑자기 바뀌는 바람에 경쟁률만 높아졌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이런 이유로 교육 전문가 사이에서는 SAT·ACT 점수 배제가 오히려 소수 집단의 대합 입학 기회를 박탈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 2016년 스탠포드대 연구팀이 UCLA 입학생 에세이 6만 건을 분석한 결과 부모의 경제력과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정성평가 항목의 점수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비춰볼 때 입시 전형 기준이 모호할수록 학업 성취 경계선에 놓인 학생들이 겪는 불이익은 커지고, 특권층에 더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