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목적은 선과 악 지도, 반복적인 훈련해야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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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현장에서

소프라노 조수미씨의 콘서트에 간 기억이 나는데, 역시 ‘신(神)이 내린 목소리’였다. 조수미같은 명연주자를 ‘virtuoso’라고 부른다. 그런데, virtuoso는 또 ‘덕스러운 사람, 고결하고 정숙한 인물’이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 그 이유는 어원이 (virtue) 같기 때문이다.

‘덕(virtue)’을 다룬 대표적인 서구 철학자는 아리스토텔레스다. 참고로 그는 플라토의 제자였고, 플라토는 소크라테스의 수제자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더대왕의 스승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그의 최대업적은 ‘니코마코스 윤리학’이란 책이다. 이 책을 통해 그는 덕이 무엇이며, 왜 인간이 덕을 추구해야 하는지, 또 어떻게 행동해야만 덕을 세우는 것인지를 꼼꼼히 다뤘다.

그가 말하는 일곱 가지 덕은 용기, 절제, 재물, 명예, 노여움, 관계, 그리고 겸손이다. 용기는 모든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덕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 뒤에는 선이 존재한다. 학문 중 가장 고귀한 철학은 궁극적으로 선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흥미로운 것은 진화론이 주장하듯 윤리란 생존과 유전자 전달을 위한 인간의 도구가 아님을 아리스토텔레스가 그 옛날 이미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인간의 체험과 지(智)의 한계를 넘어 독립적인 진리(truth)가 수학과 물리학에 존재함을 인지하고 같은 이론을 윤리에도 적용했다. 즉, 윤리와 덕도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진리라는 뜻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DNA와 덕은 별개이며, 오직 교육과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생기는 습관만이 덕을 이루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그 가르침이 리케이온이란 아카데미를 통해 제자들에게 전수되었는데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교육자요 교장 선생님이었다.

학생은 다듬어지지 않은 보석과 같다. 그래서 공을 들여 가르치되 울퉁불퉁 튀어나온 성격과 성품의 모서리도 다듬어줘야 한다. 학교는 공부만 가르치는 곳이되어선 안 된다.

윤리를 다뤄야 한다. 필자가 사역하고 있는크리스천 학교는 공부도 중요히 여기지만 윤리, 진리, 그리고 성품 개발에 더 큰 비중을 둔다.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이 배우는 자로 하여금 선과 악을 분별하고, 덕스러운 성품을 소유하고, 더 나아가 남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학교가 정보만 전하면 CS 루이스가 경고하듯 ‘영리한 악마’만 만들어낼 수 있다.

지난 30년간 미국 내 초중고등학교는 정보와 기술 전달에만 전념해왔다. 빌 게이츠 같은 비즈니스 리더들이 정보시대에 필요한 일꾼을 배출해 달라 호소한 것과 종교와 교육을 분리해야 한다는 진보주의 측의 주장이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요즘 폭동과 약탈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교육방침이 틀렸음을 인정해야 한다. 진리를 가르치지 않았고, 배움과 반복을 통해 윤리적 사상이 학생의 마음에 뿌리내리지 못했기에 요지경이 된 것이다.

학교에서 덕과 윤리를 다루지 않는다면 부모가 그 몫을 감당해야 한다. 사실, 가정이 학교보다 먼저 자녀를 교육하는 곳이다. 그렇다면 학교만 탓할 수 없고, 오히려 부모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 가르침과 훈련을 통해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고, 윤리가 무엇인지 깨닫게 하고, 반복을 통해 덕스러운 결정과 행동을 선택하도록 자녀를 가르쳐야 한다.

자식을 다 조수미같은 명연주자로 만들 수는 없지만, 윤리적이고 덕스러운 사람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가능하다. 돈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다. 그저 부모가 가르치고 본을 보이고 반복하면 된다. 윤리적 사상과 덕스러운 성품을 소유한 인간다운 인간을 배출하는 것이 향후 2~30년간 우리 세대의 부모와 교사가 감당해야 할 큰 과제라고 생각한다.

제이슨 송 교장 / 새언약 중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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