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점검] 끝없이 치솟는 대학 등록금, 부담 늘어나는 학생·학부모…원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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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ㅣ 긴급점검: 치솟는 대학 등록금

등록금 인상에 관한 대학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일부 대학들이 이미 지난 가을학기에 등록금 인상을 단행한 데 이어 다른 대학들 또한 이번 가을학기부터 등록금 인상 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의 여파로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학생들을 위해 일부 대학은 학비를 할인해 주거나 동결하며 수 년째 이어오던 대학들의 등록금 인상 추세가 한풀 꺾이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예산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는 명분으로 등록금 인상에 눈치 보던 대학들이 하나 둘씩 등록금 인상을 결정하기 시작했다. 일부는 코로나19 이전 인상 추세로 회기 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를 제기한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대학 등록금의 주요 원인과 영향 등을 분석했다.

“팬데믹 여파로 등록률 감소…예산 부족 충당”

“등록금 인상률, 물가상승률 앞질러
정부 지원이 오히려 학비 인상 요인”

일부 대학들이 등록금 인상을 발표했다. 팬데믹으로 대학 정원을 채우지 못한 손실을 메우기 위함이지만 학부모·학생들의 반발이 크다.

지난해 코로나19로 다수의 대학은 학비를 할인하거나 동결하며 신입생 정원 확충에 힘썼다.

학비 동결 및 할인에는 팬데믹으로 대부분의 대학이 정상적으로 학기를 진행하지 못한 것에 대한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모든 학과과정을 원격으로 진행했던 스탠퍼드, 예일, 웰즐리, 앰허스트 등 8개의 명문대는 지난해 가을 등록금을 약 4~5% 인상했다.

가을학기를 원격으로 진행하고 봄학기부터 부분적으로 대면수업을 진행했던 하버드와 캘텍 또한 등록금을 약 4% 인상하며 학생들의 빈축을 샀다. 이를 계기로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등록금 인상을 놓고 눈치를 살피던 대학들은 하나 둘씩 등록금 인상을 발표하고 있다.

지난 18일 보스턴칼리지는 2021-2022년도 등록금을 전년 대비 2.5%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등록금, 기숙사 등 비용을 합산하면 보스턴칼리지 재학생들은 올해부터 연간 7만7308달러라는 어마어마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버지니아텍 또한 지난 22일 이사회 결정을 통해 2021-2022년도 등록금을 전년 대비 2.9%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등록금 뿐만 아니라 기숙사 비용도 전년 대비 3.3% 인상을 결정해 실제 학생이 추가로 지불하는 비용은 전년 대비 약 1000달러 가까이 늘어나게 된다. 펜실베니아 대학 등 다수의 대학도 3~4% 수준의 2021-2022년 등록금 인상을 예고했다.

▶30년 이어진 등록금 인상

미국 대학 등록금은 지난 30년간 꾸준히 인상되어 왔다.

지난해 10월 칼리지보드가 1990년부터 2020년까지 미국 2년제 공립, 4년제 공립, 4년제 사립대학교의 등록금 변화를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물가상승률이 반영된 2년제 공립대의 등록금은 30년 전 대비 1960달러 상승한 3770달러, 4년제 공립대 평균 등록금은 6760달러 상승한 1만560달러인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상승폭이 큰 4년제 사립대의 경우 평균 등록금이 30년 전 대비 무려 1만9090달러 상승한 3만7650달러였다.

노동통계국이 소비자물가지수(CPI)를 토대로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1990년 당시 1달러는 2020년 2달러 2센트의 가치를 지닌다. 즉, 물가상승배수가 2.02배인 것이다.

4년제 사립대의 평균 등록금이 30년 전과 비교해 2.03배, 2년제 공립대의 평균 등록금이 2.08배, 그리고 4년제 공립대의 평균 등록금이 2.78배 상승한 사실을 놓고 본다면 등록금 상승률은 물가상승률을 앞지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주 정부들이 고등교육에 배분하는 예산이 크게 줄며 이를 채우기 위해 4년제 공립대 사이에서 더 가파른 등록금 상승이 나타나고 있다.

대부분의 대학이 코로나19로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등록금 인상을 철회하여 30년간 이어진 추세가 한풀 꺾이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대학들 또한 예산확보가 어렵게 되자 다시 등록금 인상이란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보인다.

▶정원미달로 인한 예산부족

작년과 올해 대학들이 등록금 인상 결정을 내리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등록 학생 감소로 인한 예산저하에 비롯된다. CNBC가 지난해 10월 컨설팅업체 NEPC의 조사결과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2020년 미국 대학 가을학기 학부 등록률은 전년 동기대비 4% 감소했다. 신입생 등록률만 놓고 보면 무려 16% 감소했다.

새해에도 대학 정원 미달 추세는 이어지고 있다. 지난 11일 교육매체 ‘인사이드하이어에드'(insidehighered)는 조사기관 ‘학생클리어링하우스 연구센터'(National Student Clearinghouse Research Center)의 연구결과를 인용하며 2021년 미국 대학 봄학기 학부 등록률은 전년 동기대비 4.5%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시민권 및 영주권자에 비해 대학에 더 큰 비용을 지불하는 유학생의 감소 또한 예산확보가 절실한 대학들에게는 큰 타격이다. 지난 19일 월스트리트저널이 인용한 국토안보부 이민세관단속청(ICE) 산하 유학생 관리 시스템(SEVIS) 정보에 따르면 직업 훈련 비자인 F-1과 M-1비자 소지자가 전년 대비 18% 감소했다. 숫자로 환산하면 약 125만 명의 유학생 및 외국인 직업 훈련생이 비자를 포기하고 귀국한 것이다.

새로 미국 대학에 등록하는 유학생 신입생의 등록률은 전년 대비 무려 72% 급감했다. 팬데믹으로 해외 미국 대사관 비자 업무가 일시적으로 중단되는 상황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 해 6월부터 해외소재 미국 대사관의 학생비자 업무가 재개됐음에도 이렇게 유학생 신입생 등록률이 급감한 데는 트럼프 행정부 말미 추진한 반이민정책과 미국 내 불안한 팬데믹 정세 등의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월스트리트저널은 분석했다.

대학 예산의 주요 수입원인 등록금 감소는 자연스레 대학의 손실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9일 대학운영이사회협회(Association of Governing Boards of Universities and Colleges)의 고등교육 자문위원은 폴 프리가 교수 노스캐롤라이나대학 교수는 2020-2021 회계연도 기준 107개 대학의 등록금 감소로 인한 손실이 자그마치 740억 달러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지난달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3차 경기부양책에 대학을 위한 400억 달러 지원이 포함되어 있지만 공립대에 국한된 지원책이다.

“과거 정부지원 확대에도 등록금 인상 부담은 고스란히 학생과 학부모에게”

지난 30년간 지속된 등록금 인상의 부담은 고스란히 학생과 학부모가 짊어져야 한다. 치솟는 대학 등록금을 잠재울 현실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과거 정부 지원에도 학비 인상

대학의 입장만 살펴보면 손실을 막기 위해 최후의 수단으로 등록금을 인상했다는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 연구결과를 통해 대학들의 등록금 인상 추이를 살펴본다면 오늘날 대학이 주장하는 등록금 인상 정당성에 다소 힘이 떨어진다.

지난달 19일 CNBC는 ‘민주당의 학자금 탕감 정책은 향후 학비 인상의 요인을 제공하고 저소득층 학생의 미래를 헤칠 수 있다’는 제목의 사설을 게재했다. 사설은 지난 2016년 전국경제조사국에서 발표한 흥미로운 보고서를 소개했다.

보고서의 골자는 연방정부가 학생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학자금 탕감, 보조금 증액 등 지원을 확대할 때마다 이를 이용해 대학이 등록금을 인상했다는 것이다. 보고서의 공동저자인 그레이 고든 교수는 “연방정부가 학자금을 위한 지원금 확대 등의 정책을 펼치던 1987년부터 2010년 사이에 미국 대학 평균 등록금은 102% 상승했다”며 “만약 이러한 확대정책이 없었다면 등록금은 16% 가량 오르는데 그쳤을 것이다”라고 보고서를 통해 설명했다.

2015년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발표한 보고서도 이러한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보고서에 따르면 연방 정부가 학자금 지원금을 1달러 늘릴 때마다 대학은 약 60센트의 등록금을 인상한 것으로 확인됐다. 학자금 지원의 확대로 소비력이 늘어난 학생을 상대로 등록금을 인상시키면서 이익을 취한 것이다.

논문 ‘왜 대학은 비싸지는가?’의 저자 데이빗 펠드맨은 “특히 사립대는 정부가 학자금 지원을 확대할 경우 대학 예산에서 빠져나갈 장학금 등의 비용을 대체하며 등록금을 인상하지 않고도 예산확보가 가능했다”며 정부 지원에 얹어서 등록금 인상을 통해 필요 이상으로 예산을 확보하려는 대학들의 태도를 비판했다.

현재 바이든 정부는 1인당 1만 달러의 연방 학자금 대출 채무 탕감을 추진하며 필요하다면 의외의 동의가 필요 없는 행정 조치까지 검토 중이다. 학자금 대출에 허덕이는 이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또다시 대학들에게 등록금 인상의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헤리티지 파운데이션 교육정책센터 인지 M. 버크 소장은 CNBC와의 인터뷰를 통해 “바이든 정부가 끝없이 치솟는 대학교 등록금을 잡기 위해서는 납세자의 돈으로 학생들의 부채를 탕감하는 것 외에 교육비를 낮출 수 있는 실질적인 정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학부모에게 가중되는 부담

등록금 인상의 부담은 학생과 학부모가 고스란히 짊어지게 된다. 특히 팬데믹으로 인한 손실을 막기 위해 결정한 등록금 인상은 모두가 어려운 시기에 책임을 학생과 학부모에게 전가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교육기관 프린스턴리뷰 로버트 프래넥 수석 에디터는 “대학이 처한 어려움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팬데믹 상황 가운데 조직이 겪는 어려움과 개인이 겪는 어려움은 엄연히 다르다”며 대학의 등록금 인상 결정을 비판했다.

라크라센터에 거주하는 한인 김모씨(46세)는 내년에 대학 입학을 앞둔 첫째 자녀의 학비 걱정이 이만 저만 아니다. 김씨는 “대학생 자녀에게 제공할 경제적 지원뿐만아니라 내 자녀가 짊어지게 될 학자금 대출의 부담도 큰 걱정거리”라며 “정부가 팬데믹 지원금을 받은 대학 위주로 향후 몇 년간 등록금 인상 불가 조건을 내거는 등 실질적인 정책을 펼쳐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균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