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23.07.26 08:01
교육부 산하 민권국(OCR), 조사 시작 통보
최근 레거시 입학 폐지요구 커진 데 따른 조사
학벌의 대물림 수단으로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미국 대학의 ‘레거시(동문 자녀 우대) 입학 제도’에 대해 조 바이든 행정부가 조사에 착수했다. 지난달 미 대법원이 대학 입학의 소수인종 우대 정책인 ‘어퍼머티브 액션’에 대해 위헌 결정을 한 이후 “레거시 입학 제도도 명분이 없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었다.
뉴욕타임스(NYT)는 25일(현지시간) “교육부가 하버드대의 레거시 입학 제도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조사는 비영리단체인 ‘민권을 위한 변호사’가 교육부에 “하버드대의 레거시 입학 제도가 민권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진정을 낸 데 따른 것이다.
교육부는 이날 “세부 조사 내용은 언급하지 않겠다”면서도 “민권법 제6호에 따라 하버드대에 대한 공개 조사가 있다는 점은 확인할 수 있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1964년 제정된 민권법 제6호는 인종이나 피부색, 출신 국가를 이유로 한 차별, 참여 배제, 혜택 거부 등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NYT는 “바이든 행정부의 이번 조치는 어퍼머티브 액션 위헌 결정 이후 대입 관행에 대한 조사가 강화되는 시점에 이뤄진 것”이라며 “대학이 종종 부유층에게 주는 이점에 대한 분노가 다시 표면화됐다”고 전했다.
민권을 위한 변호사 측은 하버드대가 레거시 입학을 확대하면서 흑인, 히스패닉, 아시아계 수험생이 불리해졌다고 주장했다. 최근 공개된 하버드대 경제학과 라즈체티교수팀의 연구 결과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하버드대·예일대·프린스턴대 등 아이비리그 8개 대학과 매사추세츠공대(MIT), 스탠퍼드대 등 12개 명문 사립대 입시에서 부유층 가정 출신 수험생 합격률이 다른 계층보다 월등히 높았다. 이들 12개 대학 재학생 6명 중 1명은 소득 상위 1% 가정 출신이었다.
대학입학자격시험(SAT) 점수가 같은 경우, 소득 상위 0.1% 초부유층 가정 출신은 다른 수험생보다 합격 가능성이 2배 가까이 높았고, 소득 상위 1% 가정 출신도 다른 수험생보다 합격 가능성이 34% 높았다. NYT는 “소득 상위 1% 가정 출신 수험생이 대입에 활용할 수 있는 가장 유리한 제도가 동문 가족이나 고액 기부자를 우대하는 레거시 제도였다”고 전했다.
미 대법원의 어퍼머티브 액션 위헌 결정의 여파가 레거시 입학 제도 폐지론으로 불똥이 튄 형국이다. 바이든 대통령도 대법원 결정 직후 레거시 입학 제도를 겨냥해 “(이 제도가) 기회가 아닌 특권을 확대한다”며 제도 개정 의지를 밝혔다. 민주당 소속 제프 머클리 상원의원(오리건주)과 자말 보우먼 하원의원(뉴욕주)은 동문과 기부자 자녀에 대한 대학의 특혜를 금지하는 내용의 법안을 조만간 발의할 계획이다.
니콜 루라 하버드대 대변인은 교육부의 이번 조사와 관련해 “법원 (어퍼머티브 액션 위헌) 판결 이후 법 준수를 위해 학생 입학 방식을 이미 검토하고 있다”고 공개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하버드는 기회의 문을 열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의 입학 지원을 장려하기 위한 노력 배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김형구(kim.hyoungg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