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앙일보] 이민정 에디터
“결국 해내는 아이는 남과 다른 한 끗이 있어요. 끈기, 정서적 안정, 경쟁심, 인내심 등이 좋죠. 그런데 그런 것들은 모두 ‘겸손’과 연관이 있어요.”
“학업성취를 이룬 상위 0.001% 아이들의 공부법은 무엇이 다르냐”는 질문에 송용진(수학과) 인하대 교수는 “30년간 수학·과학 분야 영재를 발굴하고, 지도하며 발견한 공통점”이라며 이렇게 답했다. 이 한 끗 없이는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자기가 원하는 걸 성취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송 교수는 1995년부터 국제수학올림피아드(IMO) 한국 대표단을 이끈 단장으로 유명하다. 1988년부터 매년 IMO에 출전해 온 한국은 송 교수가 대표팀을 이끌던 2012년 첫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후 2017년 또 한 번 1위에 올라서며 수학 강국의 입지를 다졌다. 송 교수는 최상위 수학 영재들을 지도해 왔다. 그에게 지도받은 학생 상당수는 현재 수학자, 과학자의 길을 걷고 있다.
송 교수가 지도한 학생들은 모두 재능과 학업 능력이 뛰어난 학생들이다. 하지만 모두가 최상위 성적을 받은 건 아니다. 영재라고 해서 다 재능을 꽃피우며 상위 0.001%로 성장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결국 해내는 최고 영재들의 공통점을 정리한 『영재의 법칙』을 쓴 것도 그래서다. 송 교수는 “최고 영재들에게 좋은 지능은 꼭 필요하지만 그들 중에서 더 잘하려면 더 이상 IQ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결국 성패를 가르는 건 태도”라는 것이다. 송 교수가 말하는 태도란 무엇일까? 그 태도는 어떻게 해야 길러지는 걸까? 지난달 24일 송 교수를 만나 물었다.
Intro. 결국 해내는 아이는 한끗이 다르다
Part1. 겸손 : 자신을 낮춘다
Part2. 반복 : 창의력을 뇌에 새긴다
Part3. 정서적 안정감: 엄마가 침착했다
💡 겸손: 자신을 낮춘다
흔히 영재라고 하면 탁월한 지능을 떠올린다. 24개월 아이가 가르쳐 준 적도 없는 한글을 읽거나, 고난이도의 수학 문제를 푸는 식이다. 하지만 높은 지능만으론 안된다. 공부를 잘하려면 학습 태도부터 갖춰야 한다. 송 교수는 좋은 학습 태도를 갖추기 위해서는 “겸손한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Q. 영재 하면 한 가지만 몰두하는 괴짜가 떠오릅니다. 겸손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여요.
A.
미디어가 그린 영재의 모습이죠. 현실 속 영재는 다릅니다. 영재들도 여느 아이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실수도 하고, 틀리기도 하고, 뒤처지기도 하고요. 영재도 실패를 피할 순 없어요. 영재 중에서도 끝까지 해내는 아이들은 실패에 쉽게 좌절하지 않습니다. 왜 그런가 살펴보니 모두 겸손하다는 공통점이 있더군요. 흔히 머리 좋은 아이들은 완벽주의를 추구해서 계획대로 안 되면 쉽게 좌절하기 쉬워요. 그런데 겸손한 아이들은 그것을 딛고 일어서는 힘이 있지요. 누구에게나 가장 중요한 학습 동기는 경쟁심인데 그것이 건전한 경쟁심이어야 해요. 남들이 자기보다 더 나은 것을 인정하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경쟁심 말입니다. 그런 아이들이 결국 승리합니다.
Q. 겸손은 마음가짐이잖아요.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요?
A.
태도는 몸에 배야 합니다. 그래서 훈육이 필요해요. 아이들은 본능에 따라 행동합니다. 이건 지능과 관련이 없어요. 예의범절 알고 태어나는 아이는 없으니까요. 훈육은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바로잡을 기회를 주는 겁니다. 특히 특출난 재능을 가진 아이일수록 훈육이 중요합니다. 우쭐한 마음에 자기중심적 성향이 강하거든요. 이러면 공부만 잘할 뿐 함께 사는 법을 모르는 사람으로 성장합니다. 저는 훈육을 크게 칭찬하기, 선 긋기, 야단치기로 나누는데요. 적절한 칭찬과 엄격한 선긋기는 야단치기보다 더 중요하고 어렵습니다. 과다한 칭찬은 독이 될 수도 있어요.
Q. 과다한 칭찬이 독이 된다고요?
A.
칭찬은 자주 할수록 좋겠지요. 자의식 강하고 감정이 예민한 아이일 수록 더욱더요. 다만 타고난 본성을 칭찬하면 안 됩니다. “넌 천재야” “머리가 좋으니까 뭐든 잘해”라는 식의 칭찬은 피하는 게 좋아요. ‘나는 뭐든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길 수 있어요. 그러면 남들보다 못할 때 다른 핑계를 대거나 피하게 됩니다. 아이가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하는 것 같다면, 평소 어떻게 칭찬하는지를 돌아보세요. 아이에게 과도한 기대감을 안겨줬을 가능성이 큽니다.
Q. 그럼 어떻게 칭찬해야 하나요?
A.
노력을, 구체적인 행동을 칭찬하세요. ‘오늘도 제 시간에 책상 앞에 앉았네’ ‘약속을 끝까지 지켰네’ 하는 식으로요.
Q. 선긋기와 야단치기도 방법이 따로 있나요?
A.
선긋기는 남들에게 결레가 되거나 피해를 주는 행동을 바로 잡아주는 방향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겸손한 태도와 남과 어울려 살기 위한 사회성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됩니다. 또 야단칠 때엔 원칙이 필요해요. 첫 번째 원칙은 방법의 일관성입니다. 야단치기 전에는 반드시 두 번 경고한다거나, 야단치는 방법을 일정하게 하는 것이죠. 두 번째는 화내지 않는 것입니다. 훈육할 때 화를 내거나 막말을 하면 훈육의 효과가 떨어집니다. 화내지 말고 아이의 잘못된 행동에만 집중하세요. 마지막은 짧고 강하게 말하세요.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과 말은 몸에 밴 습관과 같은 것입니다. 붙들고 길게 설명하는 것은 별 도움이 안 됩니다. “여기서 그만”처럼 아이가 고쳐야 할 행동을 강한 한마디로 짧게 지시하세요.
💡 반복: 창의력을 뇌에 새긴다
영재들은 창의력도 남다르다. 어려운 문제도 생각지 못한 새로운 방법으로 풀어낸다. 남들은 이해하기도 어려운 문제를 쉽게 해결하는 걸 보며 사람들은 “역시 머리가 좋으니 다르네”라고 칭찬한다. 마치 날 때부터 창의적이었다는 듯 말이다. 하지만 송 교수는 “영재도 부단히 노력한다”며 “창의력은 반복학습에서 나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수학 공부를 권했다.
Q. 창의력이 반복학습으로 길러진다고요?
A.
창의력은 기존에 없던 생각을 해내는 힘을 말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창의적 사고력이죠. 그런데 새로운 걸 생각해 내려면 기존 지식이 있어야 해요. 새로운 생각은 기존 지식을 익히고, 해석하고, 내 생각을 더하는 과정에서 탄생합니다. 우리는 이걸 ‘수학적 사고력’ ‘문제 해결력’이라고 부릅니다. 창의력을 기르려면 수학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죠. 수학 문제를 풀 때 문해력, 판단력, 활용력 등 다양한 사고력을 복합적으로 사용하거든요. 여러 생각을 조합하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뇌가 논리적으로 생각해 문제를 해결하는 습관이 생겨요.
Q. 영재들은 수학을 어떻게 공부하나요?
A.
단순 반복과 암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게 특징입니다. 다양한 기초 지식 습득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데요. 예를 들어 개념의 정의를 꼼꼼하게 읽어보고, 강의 내용을 적고, 반복해서 읽는 식입니다. 아무리 똑똑해도 아이가 아는 지식은 수학자의 지식에 비해 미약합니다. 그걸 아는 아이들은 기초 개념과 원리 이해에 시간을 씁니다. 또 다양한 문제를 반복해서 풉니다. 문제를 풀어봐야 내가 개념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알 수 있거든요. 단순 연산부터 응용, 심화까지 가리지 않고 풉니다.
Q. 최근에는 사고력 수학 학원이 성행인데요. 도움이 될까요?
A.
학원을 다니느냐, 어떤 학원을 다니느냐는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내 손으로 직접 문제를 풀었느냐가 중요하죠. 학원에서는 문제를 많이 풀게 합니다. 그래서 사교육 효과가 없다고는 말 못해요. 다만 문제를 내 방식대로 풀었느냐, 풀이법을 외워서 풀었느냐가 중요해요. 이게 바로 0.1%를 다르게 만드는 한 끗이죠. 수학 문제는 내가 이해한 만큼만 풀 수 있어요. 처음에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개념이 적용된 문제를 풀며 다각도에서 개념을 분석할 수 있습니다. 이걸 반복하며 개념을 이해하는 거예요. 그래야 내 말로 개념을 정립할 수 있습니다. 내 손으로 풀어야 하는 건 그래서예요.
Q. 선행 학습은 어떤가요?
A.
아이의 지적 능력이나 학습 의지에 따라 효과가 다르기 때문에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선행에 몰두하다 보면 생각을 포기할 수 있어요. 학습량이 많으니 생각할 시간이 부족한 거죠. 어려운 문제는 건너뛰고 쉬운 문제만 풀려고 합니다. 이러면 수학적 사고력은커녕 개념도 제대로 못 배웁니다. 창의력 키우려면 배움의 속도를 낮추세요. 진득하게 앉아 개념의 원리를 따져보고, 심화 문제까지 풀어봐야 합니다. 문제가 어렵다면 주어진 조건과 가정을 찾는 연습부터 해보세요. 조건 속에 관련 개념이 숨어 있거든요. 거기 실마리가 있어요.
Q. 수학을 싫어하면 안 되겠네요.
A.
어릴 때부터 수학과 친숙해지면 좋습니다. 학업성취를 이룬 상위 0.1% 영재들이 언제부터 수학을 접했나 조사한 적이 있어요. 신기하게도 거의 예외 없이 유아 때 방문교사가 오는 학습지를 했더라고요. 이런 학습지는 단순 연산을 몇 달에 걸쳐서 풀고 또 풀잖아요. 단순 반복의 효과는 큽니다. 수와 친숙해질 기회를 주고, 계산 실수를 줄여주고요. 무엇보다 자신감을 갖게 하죠.
💡 정서적 안정감: 엄마가 침착했다
아이 키우다 보면 불안해지고, 불안하면 조급해지기 마련이다. 혹여 아이가 재능을 보이면 잘 키워주고 싶어진다. 아이의 재능을 알아채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도 된다. 송 교수는 “불안과 조급함이 오히려 아이의 재능을 망친다”고 했다. 아이의 재능이 얼마나 꽃피는가는 부모의 절제력에 달렸다는 것이다.
Q. 혹여 아이의 재능을 알아채지 못하면 어쩌나요?
A.
우리 아이가 영재성이 뛰어난데 덜 가르쳐 좋은 머리 썩히면 어쩌나 불안한 분들 많습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정말 타고났다면 1~2년 늦다고, 혹은 빠르다고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제발 침착하세요. 조급함을 버리고 침착한 마음으로 지도하는 게 더 좋습니다.
Q. 침착하라고요?(웃음)
A.
멀리 내다보라는 겁니다. 아이가 성공한 성인으로 크는 데에는 기나긴 과정이 필요합니다. 학습 영재는 어릴 때 발현된 능력이 다가 아닙니다. 영재성을 잘 길렀다면 보통 20대 후반에 가서야 빛을 발해요.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를 잡고 본격적으로 활약하는 시기죠. 영재성을 잘 길렀다는 건 선행 교육을 했다는 게 아닙니다. 배움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는 걸 말해요. 열정을 유지하려면 입시나 점수 등 눈 앞의 성과보다 정서적 안정이 더 중요합니다.
Q. 아이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 뭘 해야 하죠?
A.
특별한 건 없습니다. 그저 아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면 돼요. 적성과 성향에 맞는 공부법을 존중하는 건데요. 제가 그랬어요. 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를 관뒀습니다. 학교를 왜 다녀야 하나 싶었죠. 저희 어머니는 교육열이 높은 편이었는데도, 허락하셨어요. 틀에 박힌 걸 싫어하고 싫증을 잘 내는 저를 간파하신 거예요. 넉 달을 놀고 나니 지치더라고요. 제 발로 학교로 돌아갔어요. 만약 어머니가 제 성향을 무시하고 공부를 강요했다면 엇나갔을 겁니다. 이런 사례는 영재들 사이에서 차고 넘칩니다. 이런 순간에 삐뚤어지지 않고 끝까지 배움을 이어간 영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적성을 명확히 알고 열의를 쏟아요.
Q. 적성, 중요하죠. 하지만 딱히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없는 아이들도 있어요.
A.
다양한 관심사를 길러주는 게 중요합니다. 흔히 영재라고 하면 한 가지 분야에만 특출나다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키워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인슈타인도 수준급의 바이올린 실력을 갖춘 걸로 유명하죠. 관심이 생기면 덩달아 호기심도 커집니다. 호기심은 강한 몰입감과 배우려는 강한 학습 에너지를 만들고요. 끝까지 해내는 아이는 자기 관심사를 찾아 파고듭니다. 그래서 다양한 경험이 중요해요. 이때 주의할 점이 하나 있어요. 적성을 찾겠다며 각종 테스트를 보고 점수에 연연해선 안 된다는 거죠. 대표적인 게 IQ 검사예요.
Q. 지능을 알려면 IQ 검사도 필요하지 않나요?
A.
아이의 지능 정도를 꼭 알고 싶으시다면 6~8세 정도에 IQ 검사를 받아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다만 영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IQ 검사는 의미가 있는지 의심이 됩니다. 실은 내 아이가 영재인 걸 안다 한들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IQ 점수는 결과가 높든 낮든 조급함만 생깁니다. 차라리 그냥 내 아이가 상위 0.1%라고 믿으세요. 믿는 만큼 아이는 성장하기 마련이니까요.
송 교수가 지도했던 영재들은 이제 어엿한 성인이 됐다. 학생들은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어떤 학생은 송 교수의 뒤를 이어 수학자가 됐고, 또 다른 학생은 양육자의 뜻에 따라 의사가 됐다. 자신의 꿈을 쫓아 사업가가 된 학생도 있다. 송 교수는 이 아이들을 모두 ‘성공한 영재’라고 부른다. 언제 어디서든 배움의 자세로, 남과 어울려 사는 행복한 어른이 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