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현장에서
교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직에서 은퇴하고 현재 학생들을 가르치는 현직 교사들에게 조언자로 참여한 지 수년이 되었다. 수십 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 시절을 되돌아보면 보람 있던 일이 많았지만 때로는 좌절감을 느낄 때도 적지 않았다. 특히 학생 중에는 이유 없이 불손한 태도로 교사인 나에게 애를 먹인 학생들이 더러 있었다. 교사인 입장에서 이해하고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해도 좀처럼 교사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못하는 학생들이 매년 한 두 명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어 새 학생들을 맞을 때는 그들의 학적부에 지난해 교사가 기재해 놓은 평가를 읽지 않고 시작한다. 작년에 이 학생들을 맡았던 교사의 눈으로 학생을 보고 써 놓은 기록을 읽고 학생에 대한 선입견을 품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작년 선생님과 다르고 아이들은 일 년 동안에 많이 성장하고 변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해인가 유난히 나를 힘들게 했던 학생 한 명이 있었다. 이 학생은 별로 큰일도 아닌 것 때문에 화를 내며 말은 듣지 않고 가방을 던지면서 화풀이를 하는 것이었다. 여러 번 타이르고 대화를 하려고 해도 내 힘으로 도저히 그 학생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마지막 수단으로 교장에게 자문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미국에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교사들이 학생들의 가정을 방문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경우에는 학생의 가정을 방문해도 된다는 허락을 학교와 부모님에게 받고 그 학생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리고 뜻밖의 가정 형편에 놀랐었다. 학생의 집이 빈곤하다는 것에 더해서 부모님 두 분 모두 장애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 분이 거의 함께 계셔야 했다. 미국 교육 시스템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을 뿐 아니라 이민 생활이 어렵다는 것도 짐작하였다.
반에서 말썽을 부리는 학생이 집안일을 도와드리면서 숙제도 해야 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도 있어야 하는데 이 초등생에겐 쉽지 않은 매일의 생활이었다. 부모님들이 말씀은 잘하시지만 학교에 오실 수 없는 형편이고 외동인 아들이 집에서 소년가장 노릇을 하면서 동시에 부모님의 손발 역할도 하는 말하자면 진짜 효자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생의 집을 떠나면서 이 착한 학생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고심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은 학생을 이해하고 신뢰하고 그의 학습 진전과 친구 관계에 관심을 두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선생의 참을성과 바른 이해의 폭이 넓을수록 학생의 불손한 태도가 향상되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고 제시하고 싶다. 학생을 우선으로 여기는 지도자는 학생들을 올바른 길로 포용하는 인도자이기도 하다. “어린이는 내일의 지도자가 아니다. 오늘 오후의 지도자”라는 격언이 있다.
가정방문 후 그 학생은 교실에서 운동장에서 많이 철이 든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침내 자기 사정을 알아주는 선생님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지도 모른다. 또 나와 그 학생의 사이가 야단치고 맞는 관계에서 칭찬해주고 말 잘 듣는 학생의 관계로 변한 것을 느끼게 되었다. 옆자리에 앉은 학생은 점심으로 싸 온 군만두를 그 학생에게 나누어 주면서 자기보다 한 살 더 많은 그를 형이라고 불렀다. 그 형이 참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나에게 와서 해주었다.
부모님께 아들을 칭찬하는 전화를 드렸다. “속상하실 때가 있으셔도 아들이 잠잘 때 얼굴을 들여다보세요. 마치 천사의 얼굴입니다. 많이 사랑하시고 다독여 주셔서 명랑하고 학교생활에도 잘 적응하는 학생으로 키워 주시기 바랍니다.” 벌써 오래전에 일어났던 일이지만 아직도 생각이 나면 저절로 미소가 떠오르는 좋은 추억이다.
정정숙 이사 / 한국어진흥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