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 보스턴 워킹맘 ‘크리스틴 고’ 인터뷰
세계 여성의 날 특집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학교가 문을 닫은 지 11개월. LA카운티내 초등학교가 문을 연다는 소식이 반가운 엄마들이다. 특히 직장까지 있는 엄마, ‘워킹맘’들은 팬데믹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오는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여성의 인권과 지위 향상을 위해 제정된 날이지만, 한정된 시간에 집안일과 재택근무까지 병행해야 하는 워킹맘들의 현실은 고되다. 이는 한인 2세도 마찬가지. 주류 사회에 ‘보스턴 워킹맘’으로 알려진 크리스틴 고씨의 인터뷰를 통해 바쁜 하루 생활을 들어봤다.
“코로나 힘들어도 아이들 열정 발견은 보람”
“매일 허우적거리는게 현실
주위 돌아보고 격려 필요해”
“아이 공부에 가족 식사까지 챙기고 일까지 해야 하니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죠.”
보스턴에 거주하는 크리스틴 고씨는 워킹맘이다. 전직 음악·뇌 과학자에서 작가, 팟캐스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고씨도 여느 워킹맘처럼 팬데믹으로 등교하지 못하는 두 자녀를 돌보면서 시간을 쪼개 집에서 일한다. 매일 아침 7시에 하루를 시작하는데 오후까지 제대로 앉아서 쉴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워킹맘의 어려움은 연방노동부가 지난 2019년 6월 발표한 ‘미국인 시간 사용’ 보고서에 그대로 드러난다. 보고서에 따르면 직장이 있는 여성 근로자의 일평균 업무시간은 7시간 19분. 남성 근로자 일평균 업무시간(7시간 52분)과의 격차는 겨우 33분이다. 반면 가사노동 시간은 직장을 다니는 남성(1시간 47분)보다 가사활동에 쏟은 시간(2시간 17분)이 하루 30분 더 많았고 육아(2시간)도 같은 처지의 남성(1시간 25분)에 비해 일평균 35분 더 많이 했다. 회사 일도 남성 못지않게 일할 뿐만 아니라 가사와 육아에도 더 많이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다. 그나마 이 자료는 3년 전 조사 통계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학교가 문을 닫은 지 11개월. 자녀 교육에만 올인하던 전업주부도 지쳐가는 기간이다. 하물며 직장까지 있는 엄마, ‘워킹맘’들은 한정된 시간에 집안일과 재택근무까지 하느라 더 힘들다.
고씨는 이달 초 워싱턴포스트에 ‘왜 워킹맘들이 화를 낼 자격이 있는가(그리고 나머지 전염병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연휴를 맞아 쉬는 남편에게 자녀와 강아지들을 맡기고 방문을 열어놓지 않은 채 오랜만에 온전히 하루를 본인만의 일에 몰두했다고 ‘워킹맘’의 생활을 전했다. 오는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고씨와 워킹맘을 주제로 인터뷰했다. 인터뷰는 이메일로 진행됐다.
고씨는 기고문에서 남편이 육아를 도와주고 배우자의 일을 전적으로 지원하기 때문에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하지만 고씨도 스트레스가 거품처럼 쌓이면 밖으로 뛰쳐나가 혼자 차 안에 앉아 있기도 하고 가족들에게 날카롭게 말하거나 과잉반응을 보이다가 사과를 한다고 이메일에서 밝혔다. 교육 전문가인 고씨가 이럴질 데 하물며 일반 워킹맘들이 팬데믹으로 받는 정신적, 육체적, 감정적 어려움은 짐작이 갈 것이다.
고씨는 “워킹맘이라는 위치는 어렵고 힘들다. 팬데믹으로 받는 스트레스도 너무 많다”고 설명하며 “그래도 자신을 위해 10분 만이라도 투자할 것”을 다른 워킹맘들에게 강조했다. 그 시간을 통해 다시 한번 자신을 추스르고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또 고씨는 “한인들의 막강한 수퍼파워는 서로 의지하고 돕는 관계에서 나오는 것임을 우리 모두 동의할 것”이라며 “지금이 그 수퍼파워에 의지할 때다. 친구에게 연락하고 힘든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면서 함께 팬데믹에서 살아남자”고 당부했다.
Q. 본인을 소개해달라.
A. 한인 이민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7명의 자녀 중 여섯 째다. 많은 한인 이민자들처럼 내 부모님도 큰 꿈을 안고 미국에 이민을 왔고, 우리 가족들은 물론 친척들을 돕기 위해 지칠 줄 모르고 일하셨다. 우리는 보스턴 바로 외곽에서 자랐다.
이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놀라는데 나는 중·고등학교 때 음악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지만(바이올린을 연주했다) 학문적으로 고군분투했다. 대학에 진학했을 때에 비로소 나의 학문적 기반을 찾았다. (매사추세츠 노턴에 있는 ) 위튼 칼리지서 음악과 심리학을 복수 전공했고, 브랜다이스 대학(매사추세츠 월담)에서 인지심리학 석사, 퀸즈 대학교(캐나다 킹스턴)에서 뇌, 행동, 인지과학 트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청각신경학박사 후 3인용 연구원으로 학업을 마쳤다.
큰딸이 태어날 무렵 아버지가 편찮으셨는데 그때부터 학계를 떠날 생각을 진지하게 하기 시작했다. 나는 좋은 과학자였지만 충분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새로운 아기나 아버지처럼 내가 아끼는 사람들과 떨어져 일하고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그 일을 깊이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박사후펠로우십을 마치고 학계를 떠나 2006년 블로그(BostonMamas.com)를 시작하며 독립적인 커리어를 개척해 나갔다. 책(Minimalist Parenting)을 냈고, 두 개의 팟캐스트(Edit Your Life, Hello Relations)를 공동 제작하고 있으며, 두 개의 디자인 사업(Poschopic, Brave New World Design)을 시작하게 됐다. 커뮤니케이션 에이전시 ‘우먼온라인(Women Online)’에서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한다. 내가 첫발을 들여놨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다!
Q. 밤낮으로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설명해달라.
A. 허우적거리는게 현실이다. 풀타임으로 일하는데 시간은 한정돼 있어 집중해야 하는데 아이들 학업을 봐주거나 강아지를 돌봐야 할 때 방해를 받고 집중력도 떨어진다. 남편과 일정을 조율해서 일하는데 그 역시 만만치 않다.
우리의 전략적 해결책 중 하나가 내가 오전 7시부터 일을 시작하면 남편이 사무실에 출근하기 전까지 집안일을 하는 것이다. 나머지 시간은 업무 프로젝트를 하면서 아이들, 강아지, 다른 집안일로 시간을 보낸다. 솔직히 우리가 저녁을 먹을 때쯤이면 나도 하루가 끝난다. 저녁에는 남편, 아이들과 편안하게 쉬면서 심신을 회복시키는 시간을 갖는다. 그래서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저녁에는 일하지 않는다.
Q. 일하고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A. “일에 관해서 나는 굉장히 집중하는 편이다. 그래서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방해받는 게 정말 힘들다. 혼자 차에 앉아 있다. 원시적인 방법이지만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가족들에게도 날카롭게 대하고 과잉반응을 했다가 사과하기도 했다. 사과는 가족들의 관계를 회복시켜주는 방식이다. 나는 아이들이 어떻게 하루를 힘들게 보내는지, 또 어떻게 그곳에서 회복하는지 보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회복력은 아이들이 배워야 할 삶의 스킬이다. 팬데믹기간 동안 아이들은 분명 많이 보고 배우고 연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Q. 팬데믹에서도 감사할 게 있다면?
A. “분명 펜데믹은 힘들고 끔찍하지만, 우리가 정말 중요한 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만든 시간이다. 매일 우리에게 기쁨이나 위로를 가져다주는 작은 것들을 찾아내고 새로운 열정과 흥미를 키운다. 팬데믹은 내가 어떻게 살고 일해야 하는지 점검하게 하였다. 예를 들어서 나는 매일 정기적으로 회의하곤 했다. 보스턴에서 뉴욕이나 워싱턴 DC로 아침 비행기를 타고 낮 회의에 참석한 후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곤 했다. 6000마일에 달하는 거리의 보스턴~시카고~팜스프링스를 48시간 안에 출장을 갔다 온 적도 있다. 지금은 줌을 통해 회의를 진행하면서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고 있다. 다시 여행하고 싶다. 하지만 앞으로 그런 불필요한 출장은 말릴 것이다.”
Q. 팬데믹이 아이들에게 준 좋은 점을 꼽는다면?
A.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게 지내고 있는지 얼버무리고 싶지 않다. 실제로 팬데믹 기간에 형평성 문제가 드러났고, 정신건강 역시 커다란 이슈로 떠올랐다. 하지만 많은 부모가 보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이들이 이 기간에자기 주도적인 열정을 많이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기존의 열정 속에서 새로운 도전을 발견하고, 사업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 더 큰 세계로 연결되는 방법을 찾는다.”
Q. 한인 워킹맘들에게 조언한다면?
A. “너무나 많은 부모가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로 혼자만의 시간을 찾는 것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연결하는 시간을 찾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 역시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짧은 시간 동안 해야 할 게 산더미지만, 단 10분 만이라도 자기 관리나 연결시간을 갖는 게 매우 중요하다. 내 경우 말 그대로 아침에 10분 동안 요가를 맨 먼저 한다. 또 낮에는 친구들에게 몇 개의 문자를 간단하게 보낸다.
한인 커뮤니티의 경우, 한인들의 수퍼 파워는 서로 뭉쳐서 돕는 것에서 나온다는 데에모두 동의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그 수퍼파워에 크게 의존해야 할 때다. 친구에게 연락해서 잘 지내는지 확인하는 것. 힘든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일상생활에서 한인 비즈니스, 커뮤니티 멤버, 예술가와 작가들에게 관심을 두고 지원하는 것. 우리의 공동체야말로 우리가 이 팬데믹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장연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