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생들 “5000만원 환전 때, 올초보다 5000달러 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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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입력 2022.08.29 08:27 수정 2022.08.29 09:45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는 공모(28)씨는 요즘 밤잠을 설치고 있다. 최근 원화가치가 급락(환율 급등)하며 학비와 생활비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서다. 공씨는 그동안 1년에 두 번 한국에 사는 부모에게 5000만원씩 송금받아 한 학기 학비와 생활비로 사용했다.

지난 1월엔 5000만원을 환전하면 4만1900달러 정도였다. 학비(2만6000달러)와 6개월치 월세(7800달러)를 제외한 8100달러로 6개월 생활비(월 1350달러)로 썼다. 이마저도 휴대전화·인터넷 요금, 전기·가스비, 수도세와 교통비로 절반 이상을 지출하고 나면 생활이 빠듯해 자주 빵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이달에도 한국에서 부모님이 보낸 5000만원을 받았지만 실제 공씨의 손엔 3만7200달러만 남았다. 올해 들어서만 원화가치가 13% 넘게 떨어져서다. 학비와 월세를 빼니 수중에는 3400달러가 남았다. 석 달치 생활비로도 부족하다.

공씨는 “전공 특성상 유독 과제가 많아 아르바이트는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이라 전적으로 부모님께 의지하고 있는데 차마 돈을 더 보내달라고는 못 하겠다”며 “다음 학기에도 환율이 이런 수준이면 휴학을 하고 돈을 좀 모아서 졸업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꺾이지 않는 ‘수퍼 달러’(달러 강세)에 원화값이 날개 없는 추락을 이어가며 유학생과 수입업체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한국에서 돈을 받아 생활해야 하는 유학생의 고충은 만만치 않다. 새 학기 학비를 내고 생활비를 써야 하는데 원화로 같은 금액을 송금받아도 실제 쓸 수 있는 돈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미국 유학생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하루 한 끼만 먹어야 할 판” “교통비라도 아끼려고 학교까지 두 시간씩 걷는다” “이 정도면 휴학 각” 같은 글이 올라오고 있다.

미국에 파견 나가 있는 국내 업체 직원 중 월급을 원화로 받는 경우 어려움이 크다. 지갑이 얇아져서다. 미국 보스턴에 거주하는 정보기술(IT) 업체 직원은 “선배들이 2~3년 파견나오면 중형차 한 대 값은 모아서 귀국한다고 했는데 지금 같으면 적자를 각오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내 업체도 울상이다. 특히 달러 기준으로 원자재나 부품 등을 수입하는 곳은 그야말로 걱정이 태산이다. 연초부터 이어진 달러 강세에 미뤄왔던 결제와 신규 주문을 더 이상은 피할 수 없어서다.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한 반도체 장비업체는 신규 부품 주문 시기와 물량을 두고 3주째 매일 경영진 회의를 하고 있다. 지난해 9월 맺은 1년 계약이 끝나 새로 주문해야 하는데 그사이 원화가치가 20% 가까이 떨어져서다. 원화가치 하락은 곧 수익 악화를 뜻한다. 지난해 9월 30억원을 주고 샀던 물량을 지금은 35억원을 줘야 한다. 여기에 유류비 인상으로 늘어난 물류비도 골치다. 이 업체 관계자는 “유럽에서 2t짜리 장비를 들여오려면 항공비가 4000만~5000만원은 되는데 1년 전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 뛰었다”며 “그마저도 확보하기가 힘들어 일단 부르는 대로 주고 계약부터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당분간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없다는 데 있다. 지난 26일 잭슨홀 미팅에서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강도 높은 매파(통화 긴축) 발언을 하며 달러 강세는 이어질 전망이다.

최현주(chj80@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