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학교 사랑방
정확히 2007년 5월15일에 모 일간지 지면에 발표했던 글의 일부분이다.
‘미국으로 이민 온 이민 1세들은 영어를 잘하고 싶다는 강박관념에서 헤어나기 힘들다. 나도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워서 침이 꿀꺽 넘어갈 지경이다. 영어 공부를 해도 모자랄 판국에 한글로 글을 쓰겠다고 골방지기가 되어버린 지도 햇수로 20년이 흘렀다. 그것도 모자라 이젠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돈벌이하고 전혀 관련 없는 것들만 찾아다닌다던 남편의 면박도 그 모서리가 둥그렇게 변했다. 오히려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남편은 미국에 살면서 문학을 하겠다는 나의 열정은 잘못 끼워진 단추 구멍이고 깨진 난로에서 훨훨 타고 있는 장작이라고 했다. 그렇게 말로 빈정거리던 남편이 지금은 아예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더 이상 말을 건넬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포기를 해버린 것인지.
아무튼 난 그동안 꼬깃꼬깃 모았던 비자금을 탈탈 털어 조그마한 공간을 하나 얻었고 책상과 의자를 들여놓았다. 열댓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있는 공간에서 나는 신나게 한글을 배우는 아이들의 얼굴을 상상한다. 영어가 더 익숙한 아이들에게 ‘쌍 캭 뻑’ 따위의 된소리를 어떻게 하면 재미나게 가르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연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계산을 들이대며 따져 드는 남편의 서슬 앞에서 폼 나는 나의 허세는 저절로 무릎이 굽혀진다. 남편의 말대로 다음달 임대료에 끌탕을 하고 있는 꼬락서니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어쩌랴 남편의 지적대로 어긋난 단추 구멍이고 내 열정은 깨진 난로 속에서 훨훨 타고 있을지라도 누리끼리한 색깔과 똥색은 동일한 색이라는 한국적 표현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을. ‘쨍’하는 하늘이 깨어질 것 같은 맑음을 문자로 찾아낼 때의 희열감이 어떤 거라는 것을. 한국말을 잘해도 읽을 줄 모르고 쓸 줄 모르면 문맹자나 다름없다는 현실을 말해주고 싶었다. (중략)
그 당시에 한글을 지도한다고 사무실을 얻었다가 문을 닫았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아무도 한글을 배우는 데 값비싼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한글의 중요성은 알지만 한글은 영어처럼 목숨을 걸고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고학년이 되면 슬금슬금 한글학교를 떠나도 전혀 잘못된 게 아니고 한글은 읽을 줄만 알면 한글 다 뗀 걸로 모두 착각하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한글로 편지를 쓰게 하려는 마음을 접지 않았다.
한글학원 폐업하고 그로부터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가 우연히 고민의 해답을 찾게 되었다. 작자 미상인 동요는 오감의 시적 감각을 익히는 데 전혀 손색이 없었다.
‘원숭이 똥구멍은 빠알개/빠알가면 사과/사과는 맛있어/맛있으면 빠나나/빠나나는 길어/기이르면 기차/기차는 빨라/ 빠아르면 비행기/비행기는 높아/높으면 백두산’을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다.
‘백두산 뻗어내려 반도 삼천리~’가 나오는 동요의 시작은 원숭이다. 원숭이는 한국에서 살지 않았던 동물이다. 일제 강점기에 대놓고 욕은 못하고 원숭이라고 빗대어 슬픔을 달랬던 선조의 목소리는 얼마나 해학적이고 수준이 높은가. 창경궁에 동물원을 만들어 임금님이 사는 궁을 사람들의 웃음거리로 만들었던 일본정부의 노골적인 모욕에 노래로 항변했던 선조들의 노래는 노래가 아니라 슬픔이었다.
나라를 잃었지만 백두산을 위안을 삼던 선조들의 한을 전하며 동요에 담긴 민족의 통한을 아이들에게 설명해주니 시를 어렵게 여겼던 아이들이 찰떡같이 알아듣고 시 한 편씩을 썼다. 마음 같아서는 다 소개하고 싶지만 지면상 2편만 소개한다.
‘떡국은 맛있어/맛있으면 라면/라면은 매워/매우면 김치/김치는 빨개/빨가면 꽃/꽃은 알록달록해/알록달록하면 한복/한복은 설날에 입어’ – ‘떡국’ 이강현
‘한글은 어려워/어려우면 설거지/설거지는 깨끗해/깨끗하면 하얀 꽃/하얀 꽃은 예뻐/예쁘면 보름달/보름달은 둥그레/둥글하면 크림빵/크림빵은 맛있어/맛있으면 비빔밥’ – ‘한글’ 한유라
권소희 / 남가주한국학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