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선도 대학 대규모 발전기금, 도전적 실험 밑거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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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중앙선데이 입력 2021.11.20 00:21

대학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새로운 지식과 새로운 인재를 만드는 열린 플랫폼이다. 대전환의 시대에 새로운 지식과 새로운 인재는 새로운 문제에 대한 도전적 실험을 통해 만들어진다. 지난 7월 29일 미국 실리콘밸리 중심에 있는 스탠퍼드대학이 7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새로운 단과대학을 만든다고 선언했다. ‘기후 및 지속가능(Climate & Sustainability) 대학’이다.

스탠퍼드는 전 세계 종합대학 중 대학 간, 학과 간 벽이 가장 낮은 대학이다. 교수 수는 서울대와 비슷한 2279명이지만 단과대학과 전문대학원 숫자는 7개에 불과하다. 모든 학부생은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처럼 정해진 전공 없이 입학해 문리대, 공대, 지구에너지환경대학에 속해 있는 전공을 선택한다. 대학원 교육은 앞의 세 대학 외에도 경영, 법학, 의학, 교육 전문대학원이 제공한다. 교수와 학생의 소속도 복수인 경우가 많다.

스탠퍼드 기후지속가능대학은 기존의 지구에너지환경대학에 공대의 토목환경공학과를 참여시키고 범대학 차원의 환경연구원, 에너지연구원, 해양연구 시설을 하나로 통합해 구성한다. 7개의 단과대학 숫자가 느는 것은 아니다. 매직 넘버라고 불리는 7은 인간이 한 번에 기억하고 처리할 수 있는 정보량의 한계다. 단과대학의 수가 이 매직 넘버 7을 넘지 않을 때 대학 내 소통과 의사 결정을 빠르고 일관되게 할 수 있다.

주립대 발전에도 기부금 큰 역할

미국 하버드대와 MIT가 개발한 기술로 만든 장치를 퀀텀 컴퓨터 스타트업인 ‘쿠에라 컴퓨팅’ 소속 과학자가 작동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하버드대와 MIT가 개발한 기술로 만든 장치를 퀸텀 컴퓨터 스타트업인 ‘쿠에라 컴퓨팅’ 소속 과학자가 작동하고 있다 [로이터]

하버드대학도 지난 9월 7일 ‘기후 및 지속가능 부총장(Vice Provost)’ 직을 신설하고 에너지환경 전문 경제학자 제임스 스톡 교수를 임명했다. 기후변화와 지속가능성장은 21세기 온 인류가 함께 풀어야 할 문제로 스탠퍼드와 하버드가 인식한 것이다.

도전적 실험은 필연적으로 실패를 수반한다. 이 실패의 경험을 축적해 파괴적 혁신을 만들어 내려면 대학의 자체 자본이 있어야 한다. 21세기가 시작할 무렵 스탠퍼드의 발전기금은 하버드의 반도 되지 않는 62억 달러였다. 예일과 프린스턴에 비해서도 4분의 3에 불과했다. 당시 퇴임을 앞둔 캐스퍼 스탠퍼드 총장은 뛰어난 교수와 학생을 유치하고 이들의 앞서가는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발전기금의 규모를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고 호소했다. 정부 연구비만으로는 세상을 앞서가는 파괴적 연구를 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법학자인 캐스퍼 교수에 이어 헤네시 총장이 2000년 취임했다. 그는 대학 연구로 벤처기업을 창업해 성공한 컴퓨터 과학자이다. 그는 2016년까지 재임하는 16년 동안 발전기금을 224억 달러로 불려 놨다. 이로부터 5년 후인 올해 스탠퍼드 기금은 419억 달러로 늘어났다. 지난해보다 40.1%(121억 달러) 증가했다. 팬데믹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자산을 운용해 사상 최대 수익을 거두었다.

지난해 미국 대학 발전기금의 평균 수익률은 33.4%이다. 하버드 기금은 33.6% 늘어 532억 달러가 됐으며 예일은 40.2% 증가한 423억 달러, 프린스턴은 46.9% 증가한 377억 달러가 됐다. 20여 년 만에 스탠퍼드 기금이 프린스턴을 앞지르고 예일과 비슷한 수준이 됐다. 상대적으로 작은 MIT 기금의 운용 수익률은 지난해 미국 대학 중에서 최상위권인 55.5%를 달성했다. 그 결과 MIT 기금은 90억 달러가 늘어난 274억 달러가 됐다.

2021학년도 스탠퍼드 대학 예산의 약 20%가 발전기금 기여금이다. 13억3000만 달러를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장학금으로 지원하고 3억7900만 달러를 추가로 팬데믹 관련 예산으로 지원했다. 늘어난 재정을 활용해 기후지속가능대학을 설립하고 캠퍼스 중앙에 데이터사이언스 및 컴퓨테이션 교육을 위한 대형 시설 건축에 들어갔다. 당장 5억 달러가 발전기금에서 추가로 투입됐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발전기금에서 대학 운영예산의 30%를 충당하는 MIT는 당장 12월부터 모든 교수와 조교, 포스트닥의 기본임금을 3% 인상하기로 했다. 아울러 늘어난 기금으로 세상이 필요로 하는 첨단 연구 투자를 가속하기로 했다. 기후 및 지속가능 연구가 대표적 분야다.

미국 주립대학도 규모는 사립대보다 작지만 발전기금이 대학의 전략적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버클리대학은 주립대이면서도 데이터 시대를 예견해 범대학 차원의 혁명적인 데이터사이언스 교육 실험을 가장 먼저 시작했다. 놀랍게도 이 실험을 지원한 곳은 연방정부나 주정부가 아니라 인텔의 공동창업자 무어가 설립한 무어 재단과 알프레드 슬론 재단이다. 두 재단은 2013년부터 5년간 3780만 달러를 버클리와 워싱턴대학, NYU에 지원했다.

2014년 버클리 데이터사이언스 이니셔티브 책임자 데이비드 컬러 전기컴퓨터공학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제 우리는 데이터의 바다에 살고 있다. 컴퓨팅 파워는 거의 무료이며 통신은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다. 우리가 직면한 근본적인 변화는 이 넘쳐나는 데이터를 사람과 사회의 더 나은 의사 결정을 위해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새로운 데이터사이언스의 계량적 사고와 추론을 교육해야 한다.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버클리뿐만 아니라 미국과 세계의 고등 교육을 바꿀 기초를 만드는 것이다.” 2017년 컬러 교수는 버클리 역사상 처음 만든 범대학 차원의 데이터사이언스 학사 단위의 초대 학장으로 임명됐다.

서울대 빅데이터 연구원의 초대 원장으로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 설립에 전념하고 있던 나는 2018년 8월 버클리의 허름한 데이터사이언스 임시 건물에서 컬러 학장과 마주 앉았다. 범대학 차원에서 새로운 데이터사이언스 교육과 연구의 토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온 우리는 대화를 시작한 지 몇 분 만에 동지가 됐다.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두 대학이 비슷한 시기에 시작해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달려온 것이 놀라웠다.

1년 뒤인 2019년 8월 나는 그해 2월 취임한 오세정 서울대 총장의 버클리 방문에 동행해 컬러 학장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선도 대학이 선도 대학인 이유는 과감한 실험으로 앞서 나가 다른 대학이 쉽게 따라올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서울대와 버클리는 이 사회적 책임을 가진 선도 대학입니다.” 2년 임기가 끝나자 그는 버클리에서 은퇴해 구글의 특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됐다. 버클리는 올해 5월 컬러 교수에게 버클리 공로상을 수여했다.

장학금 지급, 캠퍼스 시설 건축도

2020년 1월 버클리는 데이터사이언스 학사 단위를 확대해 ‘컴퓨팅, 데이터사이언스와 사회(Computing, Data Science, Society)’로 만들었다. 이 범대학 차원의 CDSS 학사 조직을 이끌 부총장으로 마이크로소프트 케임브리지 연구소 설립자 제니퍼 체이스 박사를 영입했다. 공대의 전기컴퓨터공학부, 통계학과, 정보대학이 체이스의 우산 아래에 있다. 한 해에 6000여 명의 학부생이 CDSS 강의를 수강한다. 이 변화에 감동한 익명의 독지가가 마땅한 대형 강의실과 실습실이 없는 버클리에 새로운 시설 건축 기금으로 2억5200만 달러를 기부했다.

지난 8월 나는 버클리에서 체이스 박사를 만나 데이터사이언스 교육 연구와 사회적 문제 해결에 대해 논의했다. 그녀는 기후 변화와 헬스케어를 데이터사이언스가 도메인 전문가들과 함께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사회적 문제로 언급했다. 의대가 없는 버클리는 미국 서부의 명문 의대인 캘리포니아주립대학샌프란시스코(UCSF)와 컴퓨테이셔널 정밀 의료 공동 박사과정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익명의 기부자가 두 대학의 경계를 넘어선 협력 프로그램에 5000만 달러를 기부했다. 이 기부자는 1억 달러의 추가 모금을 조건으로 걸었다. 이 기금은 교수와 학생 유치에 쓰일 예정이다.

미국에 비해 우리나라 대학의 재정 현황은 열악하다. 고등교육 재정 투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하위권에 속한다. 대학의 발전기금도 미미할 뿐 아니라 미국과 같은 전문적 기금 운용 체계도 없다. 우리 대학이 추격자 모드에서 벗어나 혁신 대학이 되기 위해서는 등록금, 국고 보조금과 정부 연구비에 의존하는 재정 구조에서 탈피해야 한다. 목돈을 발전기금으로 모으고 자율적으로 운영해 재정 자립도를 점진적으로 높여 가야 세계를 선도하는 대학이 될 수 있다.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장. 서울대 전기공학사, 계측제어공학석사, 스탠퍼드대 박사. 2014~19년 서울대 빅데이터연구원 초대 원장. 2002년 실리콘밸리에 실험실벤처를 창업했다. 이 회사를 인수한 독일 기업 SAP의 한국연구소를 설립해 SAP HANA가 나오기까지의 연구를 이끌고 전사적 개발을 공동 지휘했다.